길도훈 교무
길도훈 교무

[원불교신문=길도훈 교무] 선정에 이르는 것은 물리적 트레이닝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정해진 시간도 없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감각을 끌어내는 게 필요하다. 선정이란 것이 곧 마음의 세계이니, 객관적 지표를 갖기도 어렵다. 그럼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선정에 이르렀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선지자가 몇 가지만 짚어보면 알 수는 있다. 그러나 선정에 대해 많이 들어 자기화하여 이야기하면 판별이 결코 쉽지 않다. 다만 선정에 자주 든 사람은 최소한 눈빛과 기운이 순수하고 맑고 영롱함, 의미로 깨어 있음, 통찰, 차분함, 진중함, 여유 등이 일상의 심신으로 배어나온다. 판별의 기준이 될 보편적인 징표가 될 수 있다. 선정에 한두 번 든 것으로는 찰나의 추억과 가능성의 발견에 불과하다. 자신이 진정한 선정에 이르렀다기에는 아직 멀었으니 적공하는 편이 낫다.

단전주가 온전하려면 마음이 단전에 온전히 머물러 스며드는 것부터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뇌에서 단전을 바라보는 정도에서 그친다. 이는 단전주가 되기 바라는 것이지 단전주가 된 것은 아니다. 마음이 단전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보는 마음’과 ‘하는 마음’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키고 조절하는 기능인 ‘보는 마음’이 실행하는 기능인 ‘하는 마음’을 단전으로 쑥 밀어 넣을 수 있다. 단전이 어느 정도 단련되었다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단전이 단련되어 있지 않다면 단전 자체를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 애만 쓰게 된다. 

또한 단전 기운이 담뿍하더라도 마음이 단전에 스미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이 단전에 스미기 어렵다. 스미려고 해도 단전 밖으로 자꾸만 튕겨 나온다. 단전 기운이 약하면 그동안 해온 단전만들기, 자기호흡, 수식법, 백회호흡, 미세호흡, 독야청정을 5분씩만 밟으면 된다. 단전에 기운이 이내 차오른다. 

이후 마음을 단전에 쑥 넣어 스며야겠다고 설정한다. 그러면 마음은 설정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속성 따라 움직여 간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겠지만 여유를 갖고 마음을 단전에 쑥 넣어 스미기를 반복하면 마음이 조금씩 단전 깊이 스며들게 된다. 이로써 감각이 생긴다. 이 감각으로 단전에서 쉬는 숨을 벗 삼아 기다리면 마음 기운은 단전에 조금 더 안착된 느낌으로 발전해간다.

마음이 단전에 안정되게 스며들면 이후에는 마음의 초점을 단전 기운의 내용에 둔다. 이때도 마음이 단전 기운이 숙성되는 방향으로 설정해 놓는다. 그리고 단전에서 숨 쉬는 것을 느끼며 기다린다. 이윽고 숙성이 활성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다가 기운이 크게 바뀌는데, 이때 초점을 잡을 만한 기운에 마음을 가볍고도 전일하게 둔다. 이 초점은 깊은 선정으로 빨려 들어가는 문과 같다. 즉 단전주선이 온전하려면 단전으로 마음이 스며들어야 하고 이로써 마음 기운이 숙성돼야 선정에 이르는 데 수월하다.

[2022년 11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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