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교무
김도현 교무

[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법문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이니 이러한 이름으로 받들어 실천하라(佛告須菩提 是經名爲 金剛般若波羅蜜 以是名字 汝當奉持).”(<금강경> 13장 중에서)

<금강경>은 기원후 500년경부터 다른 논서들에 ‘와즈라체디카 쁘라즈나빠라미따 슈뜨라(Vajracchedikā prajñāpāmitā sūtra)’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여러 차례 한역되었는데 동북아에 가장 널리 유포된 구마라집의 번역(402년)에는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신역(新譯)이라고 불리는 현장의 번역(703년)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이라고 했다. 줄여서 <금강경>으로 널리 통용된다. 영어로는 간략히 <다이아몬드경(Diamond Sutra)>이라고 하기도 한다. 

금강반야(金剛般若)란 반야(prajñā)를 금강에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이 어떤 물건이라도 파괴할 수 있듯이 지혜가 어떤 번뇌라도 혁파할 수 있다는 비유다. 또 바라밀(波羅蜜)은 ‘피안에 도달한다’는 뜻이니, 경명(經名)을 한글로 옮겨보면 ‘모든 것을 잘라내는 금강과 같은 지혜로 피안에 이르게 하는 경’ 정도가 될 것이다. 이와 다른 풀이도 있다.

‘와즈라(vajra)’는 인드라의 무기로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체를 가리키고, ‘체디카(chedika)’는 ‘자를 수 있는’이란 의미의 형용사인데 대상이 ‘번뇌’가 아닌 ‘와즈라’이다. 곧 ‘금강석이라도 잘라 버릴 수 있는 지혜’가 ‘능단금강반야’라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와즈라’는 저항할 수 없는 정신적인 힘으로서의 ‘번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경전의 이름은 ‘번개마저 잘라버리는 지혜를 완성하는 경’ 또는 ‘번개처럼 자르는 지혜를 완성하는 경’이 된다.

또 경전의 본문에 능단금강에 해당하는 ‘vajracchedikā’가 없다는 것도 재미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범본 <금강경>의 본문에는 금강에 대한 언급이 없이 “이 법문은 ‘지혜로 피안에 건너간 상태’라 이름하며, 그렇게 이것을 간직하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구마라집 이후 ‘금강’이 이 경전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금강에 대한 어원적 풀이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어떤 의미로 오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이에 정산종사의 <금강경해>의 풀이를 통해 중심을 잡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금강반야바라밀은 인도말이니 우리말로 하면 금강은 곧 생멸이 없는 본성을 이름이요. 반야는 그 이치를 깨치는 지혜심을 이름이요. 바라밀은 그 지혜로써 중생의 고해를 벗어나서 낙원의 저 언덕에 이른다는 말이다.”
 
모든 상(相)을 제거할 것을 말하는 <금강경>이지만, 형상 없는 상인 우리의 생멸이 없는 본성을 말씀해 주신 스승님의 자비법문을 생각하면서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의미를 되뇌어 본다.

/영산선학대학교

[2022년 11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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