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어매 뭣할라고 날 낳았던가, 어매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나훈아 가수의 ‘어매’라는 노래에 나오는 이 노랫말은 사는 게 얼마나 고되고 팍팍한지를 보여준다. 뭣할라고 날 낳았냐고?

사실은 어매가 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다. 중음계에서는 자신을 정확히 보고 아는지라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그 부모와 그 환경을 선택해서 온다. 어디가 더 좋거나 더 나쁜 곳은 없다. 자신의 진급에 가장 적절한 학습의 장, 영생문제 해결의 통로로서 어매가 필요하다. 괴로움을 영원히 벗어나려면 깨달음을 얻어야 하고, 사람만이 각혼을 가져 그게 가능하니 사람몸으로 오려면 어매가 있어야 한다. 내 영생의 과업을 이루기 위한 통로가 되어준 고마운 희생자인데, 죄없는 어매가 이런 한 맺힌 절규를 들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모든 존재들은 약간의 진강급은 있겠지만 그것이 그것 되고 다시 그것이 그것 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무량한 생을 이어간다. 이것이 윤회다. 윤회에서 영원히 벗어나 자유를 얻으려면 오직 깨달음을 얻는 길밖엔 없으며 깨달음은 사람만이 얻을 수 있으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 몸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일깨우는 비유들은 시쳇말로 뻥이 너무 심해 대충 웃어넘기며 듣는 경향이 있다. 부탁하건대, 제발 좀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라. 사람인 그대 하나 태어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도록 어려운 일이란 말이다. 

 

삼난을 돌파한 귀한 그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려는 서원으로
스스로 이 세상에 온 것.

섬개투침(纖芥投針)이라, 깨알보다 훨~씬 작은 겨자씨 하나를 저만치에 걸어두고 멀리서 바늘을 던져 정확히 꽂히게 명중시켜야 사람 하나가 태어나고, 나머지 명중되지 못해 태산같이 쌓인 바늘들은 다른 생명체로 간다는 말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냥저냥 어쩌다 온 것이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운 이런 경쟁을 뚫고 왔다는 걸 엄청난 일로 믿으시는가.

성자가 되려면 세 가지 난관을 통과해야 하는데, 사람 몸 받아 깨달음 얻을 가능성을 획득한 첫 번째 어려운 관문을 그대는 통과했다. 두 번째 난관은 깨달음에 대해 정확히 말해주는 가르침, 즉 불법을 만나는 일이다. 불법은 불교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내가 곧 신이며 부처라는 것을 알려주는 가르침인데 엉뚱한 곳에 빠진 이가 너무 많다. 깨달음을 인도하는 가르침이라면 아무리 작아도 그곳이 참 종교이며, 이런 불법을 만나야 한다. 마지막 관문은 심신상태가 깨달음의 말씀을 읽거나 듣는 데에 장애가 없이 태어나는 일이다. 

무량수의 중생 중에 이 세 가지 난관을 통과하는 생명체가 얼마나 되겠는가. 드물고 드물어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깝다니깐 그러네. 숙세에 쌓은 복덕과 서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불법 만나서, 깨달음의 말이나 글을 듣고 읽는 데 걸림 없다면 그대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지금 그대가 이 글을 잘 읽고 있다면 이 난관을 다 통과했다는 증거니, 로또보다 더한 행운을 거머쥔 셈이다. 넋두리할 일이 없다. 이제 천하에 쉬운 눈앞, 이 훤한 것을 보는 깨달음의 눈만 뜨면 된다. 

삼난을 돌파한 귀하고 귀한 그대여! 깨달음 얻어 자유의 경지에 이르려는 깊은 서원으로 이 세상에 자기 발로 온 것이니, 속으로든 입으로든 왜 날 낳았냐며 어매 가슴에 대못 박는 어리석고 불효막심한 자가 되지 말지어다.

/변산원광선원

[2023년 2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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