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진 교무
김종진 교무

[원불교신문=김종진 교무] 갱년기 증상 중에 건망증이 있다. 전체적으로 음기가 약해지는 갱년기에는 마음의 브레이크도 약해진다. 생각은 산만하게 마구 가지를 쳐 나가는데 기억력은 급격히 약해진다. 이때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게 아니라, 없어져 가려는 그 기억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

기억도 정보의 저장 작용이다. 따라서 정을 압축하는 능력과 기운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육체와 달리 마음은 내가 주인이 되어 조절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생각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또는 필요할 때만 생각하고 바로 마음에서 놓아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다.

불교에선 “수양도 젊어서 해야지 나이가 들면 좌선도 잘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갱년기를 지나며 정신이 산만해지는 것을 제어하는 힘도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렵다는 것일 뿐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내 마음의 힘을 굳건히 지키고 정신을 딱 모아서 고요히 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기르도록 노력하면 된다. 오십이 넘으면 주위에 벌여 놓은 일들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도 이런 노력에 도움이 된다.

갱년기를 지나면 사람은 일생 중의 가을에 접어든다. 가을에 풀과 나무들은 잎이 마르거나 떨어지고, 열매와 씨를 남긴다. 사람도 그러하다. 정신적으로 완숙해지며 자신의 삶의 정수를 이 세상에 남기게 된다. 그러려면 마른 가을 나무라도 그 안쪽에선 수분이 잘 유지되듯, 피부는 건조해지더라도 정신의 유연함은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생각을 멈추고 잘라내는 힘을 지켜야 한다. 나이가 들면 오히려 말수를 줄어가야 한다. 

우리가 가을 단풍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낀다. 사람도 잘 늙은 사람은 아름답다. 나는 실제로 ‘참 아름다운 노인’을 종종 만난다. 아름다운 노인과 대화해보면 아름다운 젊은이와 대화할 때 느낄 수 없는 전혀 다른,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된다. 봄꽃이 아름답듯 가을 단풍도 아름다운 것처럼 이십대의 폭발적인 감정을 담은 시도 아름답지만, 육십대의 삶의 통찰을 담은 시도 아름답다.

/전 한국한의학연구원장

[2023년 3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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