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원불교인으로 신앙생활하면서 저 일원에 대해 알고 있는가. 동그라미가 무엇인지 알기 쉽게 말할 수 있는가. 왜 일원을 알아야만 하는가. 나와 내 삶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런 것을 생각도 않고 그냥 신앙생활 하다가 갑자기 이런 질문 받으면 무슨 답을 할까, 적절한 표현을 찾느라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질 것이다. 약간 억지스럽다고 여기면서도 열심히 찾아낸 답은 마음이다, 진리의 상징이다, 우주만유의 본원이다, 공적영지심이다, 모나지 않은 마음이다, 대충 이런 것들이다. 저 동그라미 자체가 그것인가. 내 마음이 왜 저 동그라미 속에 있는가. 우주만물이 어떻게 저기에 다 들어가는가. 이렇게 질문하면 어이없다는 듯 픽 웃으며, 그건 그냥 ‘상징’이라고 자신 있게 답할 것이다. 그럼 상징 아닌 ‘진짜’는 어딨는가. 이런 질문에는 잠시 머뭇거리다 가슴을 두드리며 여기 있다거나 두 팔을 벌려 전체에 있다는 몸짓을 보일 것이다. 

저 둥근 일원상은 진리의 상징, 진리의 사진이다. 여기서 ‘상징이고 사진’이란 말을 잘 새겨야 한다. 진짜 진리는 따로 있단 뜻이다. 객지에 나와 있는 내가 엄마의 사진을 벽에 걸어놓았다면 진짜 엄마는 사진 속에 있는가, 고향집에 계신 분인가. 엄마의 사진은 당연히 엄마가 아니다. 사진은 진짜 엄마를 떠올리는 계기이고 진짜 엄마는 따로 있다. 평상시에 잊고 살다 사진을 보는 순간 고향에 계신 진짜 엄마가 생생히 떠오른다. 사진에 용돈을 드리거나 옷을 사드리지  않는다. 사진은 사진이고 진짜를 찾아 거기에 보은해야 한다.  
 

진짜 진리는 무엇인가. 
진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겼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그라미 일원은 진리의 사진이다. 진짜 진리는 따로 있다. 진짜를 찾아야지 평생 사진 앞에 절하고 사진만 신봉하면 안된다. 진짜를 알고 진짜를 찾아서 거기에 불공하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수행을 해야 한다. 

진짜 진리는 무엇인가. 진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겼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원상 사진 말고 진짜 진리는 무엇인가. 진리가 무엇인지 지금부터 잘 듣고 느껴보라. 

그 추운 겨울이 지나고 무언가가 기온을 바꿔 새싹을 밀어올리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가. 무엇으로 인하여 봄이 되고, 더운 여름이 되게 하고, 찬바람이 불게 만들고 겨울이 되게 하는가. 무엇이 기온을 바꾸며 춘하추동 사시로 천지를 변화시키는가. 무엇이 밤낮을 번갈아 돌게 하는가. 무엇이 우주 전체를 성주괴공으로 운영시키는가. 무엇이 일체 무정물을 생주이멸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모든 생명체를 태어나게 하고 자라게 하며 병들고 죽게 만들며 또다시 태어나게 만드는가. 나는 이때다 하면서 스스로 태어났는가, 무언가에 의해서 태어나졌는가. 내가 자라나야지 하며 자라는가, 무언가에 의해서 저절로 성장되어지는가. 병들려고 해서 병드는가, 저절로 병이 생기는가. 죽으려고 해서 죽는가, 때가 되면 저절로 죽게 되는가. 당연히 무언가에 의해 생로병사 되어진다. ‘되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생생히 느끼는 것이 깨달음의 단초가 된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데 무언가가 분명 있음을 느꼈다면 일단 됐다! 찰나간에도 쉬지 않고 일체만물을 동시에 운영하는 것, 성주괴공 생로병사 생주이멸 춘하추동 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존재를 느꼈다면 당신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라, 반드시 깨달음의 순간이 올 것이다! 혹자는 아무리 설명해도 도통 무슨 말인지 아무 감각 없다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변산원광선원

[2023년 3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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