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하 교무
이도하 교무

[원불교신문=이도하 교무] 그동안 2023년 메타버스에 대해 네 가지 특징을 중심으로 꽤 긴 글을 썼다. 그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특징 하나를 골라보자면 역시 ‘가상과 현실’, 그리고 ‘생체의 만남’이다. 가상과 현실이 경계를 허물고 넘나들며, 영향을 미치고, 결국 단계적으로 ‘가상-현실-생체가 연계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가상현실을 의미하는 VR기술은 1900년대 중반부터 연구되고 시도됐다. 2015년쯤 오큘러스나 HTC Vive 등 VR 디바이스 기술의 폭발적 업그레이드로, 비로소 ‘VR의 원년’이라는 표현이 쓰일 정도의 붐이 일었다. 그리고 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3년 동안, 비대면 시대라는 현실의 대안으로 전 인류가 광범위하게 가상·메타버스의 세계에 몰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3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소세와 함께 VR 또는 메타버스 등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가치를 떠나 무엇이든 지나치게 과열되면 본질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이제는 그 열기가 챗GPT를 비롯한 AI 분야 전반으로 옮겨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메타버스는 AI를 실어나르는 ‘현시점의 적정 플랫폼 중 하나’다. 아무튼 흥분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다시 한번 이 문제를 바라보자.

이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긴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몇 가지 세부적 문제 제기를 통해 질문을 해보자.
 

먼저 가상이란 무엇인가. 또, 가상은 현실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에 의하면, 호모사피엔스라는 상대적으로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종은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우수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거나 멸종시키고 마침내 지구의 맹주가 되었다. 유발하라리는 그 비결이 ‘뒷담화’와 ‘허구의 창조’라고 표현한다. 그룹 내에서 누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가려내는 ‘뒷담화’와,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무한한 종족 연대를 만들고 즉석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신 또는 내세와 같은 ‘허구’. 이 두 요소가 인류를 강하게 묶어내고 그룹을 확장시켰으며, 결국 경쟁자들로부터 승리를 얻어냈다는 것이다. 

가상과 현실이라고 할 때의 ‘가상’은, 가상현실기술과 함께 시작된 말이 아니다. 가상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세계, 그리고 그 상상력 자체다. 오감으로 감지되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고, 보이거나 들리거나 만져지지 않는 것 등.

호모사피엔스는 태초부터 그런 허구를 상상하면서 미래를 이야기하고 대비하며 관계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XR과 메타버스는 구체적이고 기술적으로, 우리의 그 오래된 상상력을 현실과 연결시키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2023년 3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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