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하 교무
이도하 교무

[원불교신문=이도하 교무] 얼마 전 만난 모 언어학자는 ‘인류의 여명기에 호모사피엔스가 어떻게 새로운 종류의 사유와 의사소통에 도달했나’에 대해 자문했다. 인류학자들은 아직 그 미스터리를 풀지 못했지만, 돌연변이에 의해서든, 수백만 년의 진화과정에 의해서든 아무튼 지금으로부터 7~3만년 전에 호모사피엔스의 인지혁명시기에 인류는 고도의 상징체계인 언어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인간외에 다른 동물들도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의사소통)을 한다. 원숭이도 600~700여 개의 어휘를 습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동물도 아직 3개 이상의 단어를 조합하지 못한다.

호모사피엔스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사회적인 협조는 인류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핵심열쇠였다. 또한 협조에 있어 언어의 고도화는 가장 큰 비결이었다. 우리 언어는 주변세계와 우리 자신들에 대한 수다 떨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부터 진화했다. 그리고 뒷담화와 같은 것으로 상대에 대한 정보를 나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결정적인 언어의 도약이 있다. 바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물들에 대해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는 그들이 보지 않은 것과 냄새 맡지 못한 것, 그리고 만져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가상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전설, 신화, 신, 종교, 그리고 대부분의 문명들이 인지혁명과 더불어 탄생했다. 허구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능력과 가상의 탄생이 인간을 무한 결속시키고, 그로부터 엄청난 문명의 출발이 시작된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을, 호모로쿠엔스(말하는 인간)라고 부르면서 언어라는 기적과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 역설했다. 언어의 탄생-언어의 고도화-가상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인류문명의 폭발적 개화를 가져왔다.

지금의 물질개벽 현상도 가상의 탄생 또는 발명과 무관하지 않다. 소태산은 “물질문명을 경계하되 거부하지 않고, 언어도단의 진리도 언어로 풀어낼 수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 가상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보이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고, 오감으로 인지되는 현실의 영역과 마주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의 확장일까 가상의 확장일까. 아니면 가상의 소멸일까.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며 문명을 일으킨 인류가 가상을 확장시켜 현실과 경계를 허물어가는 이즈음에,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미래학자는 인류의 소멸을 이야기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2023년 3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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