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하 교무
이도하 교무

[원불교신문=이도하 교무] 인류는 가상을 꿈꾸고 이야기하면서 현실을 산다. 하지만 어쩌면 이미 오래 전부터 자연스럽게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현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만약 오감으로 인지되는 세계를 ‘현실’이라 부르고 오감으로 인지되지 않는 세계를 ‘가상’이라 설정 해보자. 그렇게 보면 우리는 오감으로 인지되지 않는, 훨씬 더 큰 세계를 항상 넘나들고 있다. 일상에서 많은 에너지를 써가며 상대방의 표정과 행동 이면의 의미를 발견하려 애쓰고, 나아가 오감이 닿지 않는 신이나 진리에 대해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음에도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인류의 상상력과 언어의 고도화에 의한 ‘가상의 탄생’은 인류집단의 규모를 확장하고, 인류문명을 극단적으로 팽창시키면서 불평등이나 차별, 기후나 환경문제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전 인류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던 3년 전만 해도, 오히려 그것이 환경을 치유하고 문명을 바로 잡기 위해 인류에게 준 자연의 마지막 선물일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현실에서 만나지 못하고 스스로 또는 강제적으로 격리되면서, 가상의 비중과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기간 3년 동안 급격히 커졌다. 동시에 다시 예전의 현실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더이상 큰 위력을 발휘하지 않고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지금은 뭐가 달라졌을까. 코로나19 팬데믹 3년은 무엇보다 XR기술과 메타버스 플랫폼, 그리고 AI-IA의 시대를 크게 앞당겼다. XR기술은 수많은 디바이스들과 플랫폼을 쏟아내고, 메타버스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용어가 됐다. 동시에 이미 AI는 보편적인 일상에서 자연스럽고 다양하게 활용되고 소비된다. 

가상은 더는 인간의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에서 적극적인 소통과 시너지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 삶의 중심을 서서히 현실에서 가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미 가상과 현실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울만큼 섞여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현실보다 오히려 가상의 영역에서 점점 더 많이 배우고, 일하고, 만나고, 사고 팔며 살아가게 됐다. 그렇게 인간 삶의 중심이 현실에서 가상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생체의 결합’이라는 또 하나의 화두가 등장한다.  

가상과 현실이 소통하고 시너지를 이루는 시공간에, 생체의 결합은 인간의 삶을 어떤 모습으로 바꿔갈까. 또한 ‘물리적·디지털적·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된다’는 4차 산업혁명의 정의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리고 이 3자의 결합들은 <원불교교전> 곳곳에 언급된 ‘병행·병진·겸전·쌍전·일여’ 등과 어떻게 연관될까.

/한국예술종합학교

[2023년 3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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