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균
윤덕균

일원 19상(편화신불 상): 
혜암 스님이 공중에 그린 일원상의 의미는?

50년 장좌불와로 유명하신 대한불교 조계종 제10대 종정인 혜암 스님은 성철 스님 열반 후 불교계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는 1993년 해인총림 방장, 이듬해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을 지냈다. 같은 해 4월 2일 종정에 추대된 후 해인사 원당암에서 주석해오다 열반했다. 

혜암 스님은 백양사를 떠나 46년에 해인사로 오셔서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초여름에 입산해 그해 늦가을에 계를 받았다. 스승인 인곡 스님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혜암은 “아악” 하고 할을 했다. 또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그는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내리쳤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허공에 일원상을 그렸다. 그랬더니 인곡 스님은 “우리 집 소가 여물을 먹었는데 이웃집 말이 배탈이 났다. 명의를 불러서 말의 병을 고쳐달라고 했더니 아랫집 돼지 넓적다리에 뜸을 떴다 하니 이 이치를 알겠느냐?”고 했다. 그 말에 혜암이 주먹을 불쑥 내밀었고, 출가를 허락받았다. 

고승 대덕들의 선문답은 말 그대로 선문답이다. 속인들이 고승 대덕들의 선문답을 해석하는 것은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는 것으로 비유된다. 말 그대로 ‘소가 여물을 먹었는데 이웃집 말이 배탈이 났고, 명의에게 말의 병을 고쳐달라고 했더니 아랫집 돼지 넓적다리에 뜸을 뜨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속인은 속인이라 고승 대덕들의 선문답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철 스님이 3천 배를 끝낸 신도들에게 준 일원상이 3천 부처님을 상징한다면, 혜암 스님이 인곡 스님 앞에서 허공에 그린 일원상은 부처이지만 부처가 아닌 편화신불을 상징한 것이 아닐까? 일원상은 때로는 법신불, 때로는 보신불도 되지만 상황에 따라 정화신불, 편화신불의 의미를 갖는다. 또한 벽암록(碧巖錄) 제33칙은 자복 화상이 고위 관료인 진조(陳操) 상서에게 일원상을 그려서 올가미를 씌우는 장면도 있다.
 

일원상은 때로는 법신불,
때로는보신불도 되지만 
상황에 따라 정화신불, 
편화신불의 의미를 갖는다.

 

일원상의 이치를 분명히 알면 
팔만대장경이나 
모든 성인이 소용없다.

일원 20상(팔만대장경 상):
선가귀감 표지에 일원상이 그려진 이유는?

<선가귀감>은 서산대사 휴정의 여러 경론과 역대 조사들의 어록 중 선가에 귀감 될만한 중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주해를 달고 송과 평을 붙여서 편찬한 책이다. 그리고 합본 된 <선교석>은 휴정의 저술로, 불교에 있어서 선과 교의 차이점을 후학들에게 논술한 책이다. 이 책은 선 수행을 하는 사람들의 지침이 될 수행법과 사상을 수록하고 있는 불교의 교과서와 같다. 그 번역본에 일원상이 그려져 있는 것은 〈선가귀감〉의 핵심 내용을 일원상이 대변한다는 의미다. 

이 의미를 법정 스님은 〈선가귀감〉 역주에서 일원상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마음, 성품, 진리, 도라 하여 억지로 이름을 붙였으나 어떤 이름으로도 맞지 않고 무슨 방법으로도 그 참 모양을 바로 그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한한 공간에 가득 차서 안과 밖에 없으며 무궁한 시간에 사뭇 뻗쳐 고금과 시종도 없다. 또한, 크다, 작다, 많다, 적다, 높다, 낮다, 깊다, 얕다 시비할 수 없으며, 거짓. 참 등 온갖 차별을 붙일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한 동그라미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 보아도 도저히 그 전체를 바로 가르칠 수 없어 이것을 가르친다면 “입을 열기 전에 벌써 그르쳤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알거나 알지 못한 데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원상의 이치를 분명히 알면 팔만대장경이나 모든 성인이 소용없다.’

법정 스님이 이처럼 일원상을 예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불교는 공안의 종교다. 공안은 불교의 깨달음의 도에 들어가기 위한 문제의 실마리다. 공안에는 경전에서 취한 것과 조사들의 어록에서 취한 것, 공안을 설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분별하는 실제적인 것이 있다. 공안에는 초하룻날이나 보름날, 주지 취임일, 대중을 법상에 모아놓고 엄숙한 의식 아래 종지를 설법하는 상당 공안과 훈계적 설법을 하는 소참 공안이 있다. 이밖에도 글자로 된 공안, 뜻을 담는 공안, 참구적인 공안 등등 무려 1700개나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공안은 말로써 설명되거나 이해되는 내용이 아니면서도 일상생활 아닌 것이 없다. 

1,700개 공안의 백미는 일원상(O) 공안이다. 그래서 사찰의 외벽에 일원상이 그려져 있다. 일원상 공안은 선을 닦는 사람들에게 공부의 내용을 주어 심오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도리며 진리 그 자체다. 이를 법정이 예찬한 것이다.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중곡교당

[2023년 4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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