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의 저서로 인해 유명해진 깊고 명쾌한 말씀이다. 시중에서는 그 뜻도 잘 모르면서 좀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자주 인용하곤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 그럼,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겠냐”며 “비싼 밥 먹고 하나마나한 별 실없는 소릴 한다”고 할 것이다.

이 말씀은 원래 옛 경서에 나오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에서 마지막 단계의 산과 물을 말씀한 것이다. 세 단계로 이뤄진 이 말씀은 진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첫 단계는 깨달음이 일어나기 전, 일반 중생의 견해로 보는 세상의 모습이다. 세상 사람들 거의 다 이 수준에서 일생을 살다 간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며,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며, 너는 너고 나는 나며, 모든 것이 다 분리된 개별적 존재로 여기며 상대적인 세상만 보고 산다. 자기의 근원에 대해서는 의문도 관심도 노력도 없이 평생 가련하게 허상만을 위하다 간다. 위에서 별 실없는 소리라고 말했던 이들이 사는 전도몽상의 세상이다. 
 

일체가 진리 아님이 없고
진리의 나타남 아님이 없으니
저 산도 물도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하며 너 또한 그러하다.

깨달음이란 이런 일상적 인식, 세상만사를 육안으로만 보는 시각에 제동을 걸면서 시작된다. 어라, 산이 산이 아니고 물도 물이 아니며, 내가 알던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니네! 이걸 확 깨닫는 것이 견성의 첫 단계다. 일체가 하나로 텅 비어 너와 나, 산과 물이 하나임이 훤해진다. 일체가 텅 빈 하나 자리, 우주 만물이 이름은 다르나 둘이 아닌 자리를 안다. 산이 공 하여 따로 분리된 산이 없고, 물 역시 공 하므로 따로 분리된 물이 없으며 일체만물이 또한 그러함을 꿰뚫은 상태다. 전 우주에 따로 분리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주가 통으로 텅 빈 불생불멸한 진리를 본 단계다. 일체가 텅 빈 진공의 경지를 정확히 봐야 비로소 견성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인 경지는 진공이 드러내는 묘유의 모습, 정확하게 인과보응하는 세계를 말씀한 것이다. 이때의 산과 물은 진리를 떠나지 않은 채 온전히 드러나 있는 진리의 위대한 작용임을 본 것이다. 우주 만물이 작용하는 대로 정확히 드러나는 인과의 세계를 손바닥 안의 구슬같이 훤히 들여다본 경지다. 진리는 산과 물, 나와 너, 우주 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함을 깨친 단계다.

진리는 진공의 측면과 묘유의 측면이 같이 있음을 봐야 참 깨달음인데, 텅 빈자리만 관하다 공 자리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일체가 다 텅 비었으니 옳고 그른 것이 어딨냐며, 인과도 없고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상관없다며 이걸 무애행이랍시고 행세하는 괴짜도 간혹 있다. 혹은 이 ‘나는 내가 아니며 텅 비었다’는 말만 듣고 내가 없어지면 허망해 어떡하냐며, 깨칠 생각은 않고 지레 겁부터 집어 먹어 도망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저러나 일단 한번 잡숴보고 말을 하시라.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알아야 수행도 하고 성불도 하고 신앙도 하고 일체 괴로움을 벗어나 자유도 얻을 것 아닌가. 

깨친 이들이 물 긷고 나무 운반하는 일체 육근 동작은 자성을 떠나지 않은 신통묘용의 수행이며, 일반인들의 노동과 겉보기엔 똑같아도 천양지차 불가사량이다. 일체가 진리 아님이 없고 진리의 나타남 아님이 없으니 저 산도 물도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하며 너 또한 그러하다. 실상을 보지 못하고 머리로만 진리를 이해하는 이들이 어찌 감히 상상이나 할 경지겠는가!

/변산원광선원

[2023년 4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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