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세상에 밥 먹는 일처럼 쉬운 게 있을까. 밥은 그냥 저절로 들어가니 일이랄 것도 없다. 갓 태어난 생명체들을 보라. 눈도 못 떴는데 어찌 알고 어미젖을 찾아 잘도 먹는다. 먹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되는 세상 쉬운 일이다. 

과연 밥 먹는 일이 쉬울까? 아니다. 밥 한 술을 먹을 때 몸 전체는 유기적인 협조체제로 정밀한 노동을 시작한다. 눈으로 보고 숟가락 젓가락질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고, 씹고 삼키느라 입과 치아와 목구멍은 풀가동 된다. 위장과 각 장기들 역시 정교하고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소화와 흡수, 배출까지 준비해둔다. 아 참, 혀의 노동도 빠지면 섭하지. 밥 하나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온몸이 총동원되는 엄청난 일이다. 숨 쉬기도 마찬가지, 들숨 날숨을 빈틈없이 반복하며 코와 폐를 비롯해 온몸이 동원된다.

세상 쉽다는 밥 먹기나 숨 쉬기보다 더 쉬운 일이 있으니 그건 바로 도를 깨치는 일, 견성하는 일이다. 물론 안 믿는다는 거 다 안다. 그런데 왜 이걸 그리 쉽다고 하신 걸까. 깨달음이 일어나는 순간은 신체의 어떤 움직임도, 그 어떤 시간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단지 ‘생각 하나만 탁 바뀌면 되는 일’이다. 생각 바꾸기는 밥 먹는 일과 달리 어떤 움직임도 시간도 필요하지 않다. 그동안 잘못 주입된 생각을 살짝 바꾸면 곧 깨달음이다. 기존의 생각을 새 생각으로 바꿔치기, 이것이면 끝이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가.
 

‘전체가 나다’,
강한 믿음으로 되뇌다 보면
깨달음의 순간이 반드시 온다.

이 쉬운 일이 왜 그렇게 어렵다고만 여겨져 온 걸까. 그건 오류로 주입된 생각 하나가 굳게 막고 있어서 그렇다. 깨달음은 단지 한 끝 차이 생각의 문제다. 움직여지지 않는 잘못된 생각 하나가 딱 버티고 있어서 깨달음을 막고 있다. 그건 바로 ‘나에 대한 생각’이다. 다생을 이어오며 ‘이것이 나다’, ‘따로 존재하는 내가 있다’고 믿어 왔다. 그 나는 실재 있는 것이 아니라 허상이며 오답이다. 깨달음은 ‘나에 대한 이 잘못된 생각 하나 돌리는 일’이다. 

그 생각을 어떻게 돌리란 말인가. ‘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털어내고 ‘전체가 나다’라고 믿으면 끝이다! 백프로의 믿음을 갖고 이것을 강력하게 선언하라. 믿고 선언하기를 깨달음이 올 때까지 반복하라. ‘전체가 나다’라고 강한 믿음으로 되뇌다 보면 깨달음의 순간이 반드시 온다! 

따로 있는 나는 없다. 이 허공이, 진리가, 신이 바로 나다. 나는 몸속에도 있고 허공에도 있다고 하지 말라. 그러면 내가 둘이 되지 않는가. 나를 둘로 나누는 이 생각이 관건이라, 아무리 애써도 깨달음은 일어날 수 없다. 여기와 저기를 가리키지 말라. 나는 둘이 아니다. 나는 온 우주에 통으로 존재한다. 몸속에 따로 있다는 생각만 지우면 된다. 신이 바로 나이니 생각을 우주로 툭 터버려라. 내가 곧 천지요 천지가 나며, 천지와 나는 같은 것, 천지여아동일체임을 곧장 믿으라! ‘너는 어디에 있냐’ 물을 때 몸 쪽으로 손이 향하거든 팔과 손을 생각으로 잘라내라. 우주허공을 가리키며 허공이 나임을 믿고 내맡겨라. 

몸을 툭 터서 전체 허공에 가득하게 하라. 허공이 나이니 늘 우주허공을 반조하라. 허공은 텅 빈 맹한 깡통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위대한 허공이며 그것이 곧 나다. 지금 눈앞 허공을 나라고 믿어 생각하나 바뀌면 즉시 깨달음이다. 나는 전체 허공에 가득하고 오직 그것만이 나라고 믿고 되뇌고 되뇌라. 툭 열리는 순간이 당신에게 반드시 온다! 생각 하나 바뀌는 일은 어떤 시간도, 움직임도 필요치 않으니 견성은 실로 밥 먹기보다 쉽다!

/변산원광선원

[2023년 4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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