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하 교무
이도하 교무

[원불교신문=이도하 교무] 지난 호 말미에 ‘뤼튼’이라는 국산 최초의 생성형 AI에게 AI를 선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던 결과를 소개했었다. 

“1. 해결하려는 문제와 관련된 AI 기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데이터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합니다. 3. 논리적 분석 능력을 키우세요. 4. AI 기술은 지속적인 학습과 발전이 필요합니다. 5.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세요. 6. AI 기술의 한계를 인식하세요.”

생성형 AI가 대답한 ‘AI에 끌리지 않고, AI를 잘 사용하는 방법’을 다시 정리해본다. 이 말은 ‘AI에 대해 이해하고, AI 기술의 한계를 인식하되, 논리적 분석 능력을 키우고 지속적인 학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마치 AI 스스로, ‘나를 잘 이해하고 나의 한계도 인식하면서 동시에 너희 인간들의 능력을 키워 나를 한번 잘 사용해 보라’고 권유하는 것 같다. 

이러한 ‘AI의 이해(기술과 한계를 동시에 인식)-인간 능력 향상(논리적 분석력, 프로그래밍 등)-지속적 학습과 발전’이라는 흐름은 마음을 ‘알고-양성하고-사용하는’ 삼학공부 구조를 연상시킨다. AI의 답변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는 선용의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수양-연구-취사의 삼학과 함께 우주만물을 모두 은(恩)의 관계로 통찰한 소태산의 사은과, 결국 AI(인공지능)와 IA(인간 증강)의 공진화를 위한 병행·병진·겸전·쌍전·일여의 일원상 진리를 통한다면 누구나 물질(AI)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AI)를 잘 사용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질개벽이 확장되고 폭발적인 수준에 이르게 될수록, 정신개벽 역시 더 포괄적이고 강화·확장된 형태로 발현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이것은 인류가 다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AI를 포함한 타자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은 스스로 인간다움을 정의하면서 동물과의 비교를 통해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과 같은 낯 간지러운 표현을 만들어냈다. 호모 로쿠엔스(언어적 인간),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 호모 모벤스(이동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도구적 인간), 호모 데멘스(광기의 인간), 호모 픽토르(상상 또는 허구를 창조하는 인간), 호모 심비우스(다른 생물종과도 공생하는 인간), 호모 디아볼루스(기존의 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 등도 유사한 맥락에서 등장한 표현들이다. 

그러나 이제 인간은 동물과의 비교를 통해 나와 우리를 규정하던 시기를 넘어, 우리와 닮은, 어쩌면 우리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AI라는 새로운 종 앞에 섰다. 그렇게 또 한 번 물음을 던지고 있다. ‘나는 누구인지, 우리는 무엇인지.’

/한국예술종합학교

[2023년 05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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