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9년(1924), 소태산 대종사 서울에서 제자를 얻다

서울에서 첫 번째로 귀의한 박사시화(좌), 박공명선(우) 쌍둥이 자매
서울에서 첫 번째로 귀의한 박사시화(좌), 박공명선(우) 쌍둥이 자매

월명암 백학명 선사는 소태산 대종사에게 정읍(井邑) 내장산 내장사(內藏寺)에서 합작으로 혁신선원을 만들자고 제의했으나, 내장사 대중들의 반대로 수포로 돌아갔다. 소태산 대종사는 내장사를 나와 경성(京城, 서울)으로 갈 결심을 했다.

김제와 전주를 경유해 원기9(1924) 330(음력 225) 아침, 소태산 대종사는 익산에 있는 이리역에서 송규·서중안·전음광을 수행인으로, 최도화를 길 안내자로 하여 경성행 기차를 타고 저녁때 경성역에 도착했다. 경성역을 나와 태평로 태평여관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최도화는 박사시화(朴四時華)를 찾아갔다. 당시 박사시화는 쌍둥이 자매인 박공명선(朴孔明善)의 딸인 성성원(成聖願)의 북촌 계동(桂洞) 집에 머물고 있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성성원의 집에서 3~4일을 머무는 동안 쌍둥이 자매는 귀의해 경성의 첫 제자가 됐다.

서중안은 전음광을 데리고 다니며 경복궁 앞 당주동(현 세종문화회관 뒤)에 있는 집 한 채를 한 달간 임대했다. 소태산 대종사와 일행은 당주동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곳을 경성임시출장소로 정했다. 박사시화와 박공명선 자매가 소태산 대종사와 일행을 시봉했고, 소태산 대종사는 1개월여 동안 경성 곳곳을 둘러봤다. 이 기간에 박사시화 자매와 이동진화·김삼매화·최강동옥·이현공 등 제자를 얻은 후 52(음력 329) 아침, 경성역에서 이리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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