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9년(1924),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열다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록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록

원기9(1924) 음력 4, 전주 전음광의 집에서 서중안·송만경·이청춘·이춘풍·문정규·박원석·전음광 7인이 불법연구회 창립발기인이 되어 창립 준비와 총부(본관) 기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들은 회상의 총부 기지 터로 토지가 광활하고 교통이 편리해 무산자(無産者)들의 생활과 각처 회원들의 내왕에 편리한 이리(익산) 부근으로 정하기로 했다.

터전을 정한 후 61(음력 429), 이리 죽산 보광사에서 창립총회가 개최됐다. 각 지역 대표들과 다수의 신도가 참석한 가운데 불법(佛法)에 정통하고 범사(凡事)에 모범이 될 만한 사람으로 본회를 지도 감독할 책임을 갖는 총재에 소태산 대종사를 추대하고, 회장에 서중안을 선출했다. 이 자리에서 원불교 초기교서이자 현행 <원불교교헌>의 연원이 되는불법연구회규약(佛法硏究會規約)도 통과됐다.

이로써 소태산 대종사가 원기 원년(1916) 깨달음을 얻은 후 영산에서 4, 변산에서 4년의 준비 과정 끝에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라는 이름으로 회상을 세상에 공개했다. 이때 창립총회에 참석해 축사한 인물 중에 정한조 <시대일보> 이리지국장이 있었다.

이 때문인지 원기9(1924) 64<시대일보> 4면에 불법연구회 창립이라는 이리 발 기사가 짤막하게 보도됐다. 정한조가 보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불법연구회가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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