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9년(1924), 진안 만덕산에서 선회를 열다

처음 선회를 열었던 만덕산 만덕암 터
처음 선회를 열었던 만덕산 만덕암 터

원기6(1921) 가을, 소태산 대종사는 정산종사에게 어디든지 가 보아라. 그러면 만나야 할 인연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전주는 돌아볼 것이 없다고 했다. 소태산 대종사의 명을 받들어 길을 가던 정산종사는 진안 만덕산(萬德山) 미륵사(彌勒寺)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는 동안 화주 최도화(崔道華)가 정산종사를 생불님으로 받들었다. 최도화는 정산종사가 봉래정사로 돌아가자 찾아와 소태산 대종사를 만나 귀의하고 진안지방과 경성지방의 인재들을 귀의시켰다. 소태산 대종사는 최도화의 주선으로 오창건과 송도성을 수행인으로 하여 만덕산 만덕암(萬德庵)에서 3개월여를 적공했다.

만덕암은 진안군 성수면 좌포에 사는 김 승지가 부종병으로 고생하는 며느리(이현공)를 위해 지어 준 산제당이었다. 불법연구회 창립총회가 끝난 며칠 뒤, 소태산 대종사는 만덕암으로 다시 들어가 12명의 제자(송규, 김광선, 오창건, 최도화, 전삼삼·전음광 모자, 노덕송옥과 손자 김대거, 이청춘, 박사시화, 이동진화, 김삼매화)1개월 선회(禪會)를 열었다. 김광선이 주관하고 최도화가 식량, 박사시화 등이 공양을 담당한 이 선회에 당시 11세의 김대거(대산종사)가 입선해 소태산 대종사, 정산종사와 처음 만났다. 이 선회는 총부 건설을 준비하며 장차 정기훈련을 시행하기 위한 구상과 준비 속에 이뤄진 선()으로 교단사에 있어서는 초선(初禪)의 의미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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