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9년(1924), 전북 익산에 총부를 건설하다

익산총부 최초로 신축한 도치원 본원실의 현 모습
익산총부 최초로 신축한 도치원 본원실의 현 모습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9(1924)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마치고 만덕산 만덕암(萬德庵)에서 1개월 선회(禪會)를 열고 하산(下山)했다. 이후 총부(總部) 건설 기지를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 344-2번지 황등호수 인근 도치고개로 정하고 서중안의 희사로 3,495평을 매입했다.

그해 가을 이리역(현 익산역) 뒤 오산면 송학리 박원석(朴元石)의 집에서 임시 간부회의를 열어 총부 신축 건을 논의했다. 서중안 회장과 각처 회원들이 의연금(義捐金)을 보냈고, 한겨울 눈보라를 무릅쓰고 김남천이 목수, 송적벽이 토수, 송규·송도성 형제가 공사를 보조했다.

전무 노력자들의 정성으로 음력 11월경에 이르러 본채 4칸 겹집과 아래채 9칸이 초가로 준공됐다. 소태산 대종사는 최초 총부 건물 이름을 도치원(道峙院)’이라 붙였고, 서중안은 회상의 이름인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를 써 총부 본채(도치원 본원실) 기둥에 걸었다.

익산 총부 건설 당년의 전무출신은 영산과 익산을 통해 십수 명이었으며, 회원은 영광·김제·전주·부안·경성·진안 각지에 남자 약 60, 여자 약 70명으로 총합 130여 명이었다. 자산은 영광 정관평 언답 백 수십 두락과 영광·익산·부안을 합해 건물이 약 수십 칸이었다. 언답은 아직도 해독(海毒염독(鹽毒)이 다 해소되지 못해 도조(賭租, 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그 세()로 해마다 내는 곡식) 수익이 근 십여 석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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