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서품' 1장의 생멸(生滅)없는 도는 〈주역〉의 일월, 한서(寒暑)의 왕래와 만나고, 인과보응 되는 이치는 '굴신(屈伸)이 서로 감응하여 이해가 생긴다'는 '상감이생(相感利生)'과 만난다고 했다. 이에 인과보응 되는 이치를 만나보고자 한다.

인과의 문제는 지금 여기 있는 나의 실존적인 물음에서 시작된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 매 순간 만나는 인연들,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 등등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이다. 이러한 의문을 가진다면 인과보응 되는 이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전〉에서는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라고 하여, 〈주역〉의 음양원리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음양상승은 '음양이 서로 이긴다'는 것으로 음양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서로 작용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주역〉에서 음양원리는 현상세계의 물리적 법칙이 아니라 하늘의 작용을 뜻하는 것으로 인간의 인식론적 사유를 넘어서 천도(天道)의 세계이다. 물론 현상세계의 구조와 원리도 천도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음양을 나눠 설명할 수 있지만, 현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음양이 일체화되어 있다. 즉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라 할 수 있지만, 남자는 음을 본체로 해 양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여자는 양을 본체로 해 음으로 작용하는 체용(體用)의 이치이다.

음양작용을 대표하는 존재가 일월이다. 그래서 〈주역〉 계사하 5장에서는 일월왕래를 먼저 논하고, 이어서 왕래의 작용은 굴신(屈伸)으로 드러나고, 굴신이 서로 감응해 이해가 생겨난다고 했다. 굴신이 서로 감응하는 것이 인(因)이고, 이해가 생기는 것이 과(果)이다. 굴신의 작용이 서로 감응해 이로움이 생길 수도 있고, 해로움이 생길 수도 있다. 

또 지난 호에서 '종시로써 두려워함은 그 요체가 허물이 없음이니, 이것을 역(易)의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해, 〈주역〉의 진리인 역도(易道)는 종시를 자각해 허물없음에 있다고 했다. 종시는 영원한 현재인 순간으로 생멸 없는 도이고, 무구(无咎, 허물없음)는 인과 윤회를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주역〉의 진리도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는 상즉(相卽)의 관계로 풀어지게 된다.

인과의 한자를 〈주역〉으로 풀면, 인할 인은 나라 국(口)과 대(大)로, 내 몸에 하늘의 위대함을 받아들임이고, 실과 과는 전(田)과 목(木)으로 마음 밭에 하늘의 작용이 결실로 드러남이다. 즉, 인과는 '내 몸과 마음에 하늘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작용했는가?'의 감응의 문제로, 하늘의 뜻에 온전히 감응하면 길(吉)이고, 감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관념이나 욕망으로 살아가면 흉(凶)인 것이다.

인과보응 되는 이치는 일원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이자, 동양철학의 핵심이기 때문에 〈주역〉과 관계는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원광대학교·도안교당

[2018년 9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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