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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교법의 총설’의 “모든 종교의 교지(敎旨)도 이를 통합활용하여”라는 대목은 교의품 1장에서 “이 모든 교리를 통합하여 수양·연구·취사의 일원화(一圓化)”라고 달리 표현한다. 일원화는 ‘교법의 총설’의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사은과 수양·연구·취사의 삼학으로써 신앙과 수행의 강령을 정하였으며”를 집약한 말씀이다. 즉 ‘수양·연구·취사의 일원화’는 일원상을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수양·연구·취사의 삼학으로써 수행의 강령을 정한 것이다. 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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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길튼 교무
2019.11.1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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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후 〈금강경〉을 보고 석가모니불을 성인 중 성인이라 찬탄하고 연원(淵源)으로 정했으며, 장차 회상을 열 때도 불법(佛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겠다고 내정한다. ( 서품 2장) 또한, 구인단원 기도해제 후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야 할 것이며 불교는 장차 세계적 주교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리고서 미래의 불법에 대해 선포하며 미래의 불법은 재래의 제도화된 불법이 아니라고 밝힌다.( 서품 15장) 그리고 ‘교법의 총설’에서 불교는 무상대도
정전
방길튼 교무
2019.11.0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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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소태산 대종사의 경륜과 포부는 에 담겨 있다. 은 소태산의 대각에서 길어 올린 샘물이다. 그러므로 을 우회해서는 소태산의 본의를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은 깨쳐야 할 의두이며 인생의 지침이기에 우리에게 둘도 없는 든든한 자산이면서 풀어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지점이 있다. 그것은 소태산의 대각은 ‘일원상의 대각’이라는 것이다.일원상은 ‘한 생각에 넘지 않는’ () 하나로(一) 두렷한(圓) 자리(相)이다. 즉 모든 의심이 한 생각을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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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길튼 교무
2019.10.3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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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정전〉은 인간을 부처로, 세계를 불국토로 만드는 매뉴얼이다. 인류의 출현 이래 이러한 기획은 처음이지 않을까. 물론 이웃종교들도 성현을 만드는 매뉴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전〉은 이를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함께 사회와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를 제거하고, 병든 문명을 고치기 위한 구체적 처방전을 던진 예는 찾기가 어렵다. 〈정전〉이 인류의 교과서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정전〉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첫째는 불법으로 심정토·심낙원을 건설하자는 선언이다. 불법의 우수한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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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10.2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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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종교와 정치의 공통점은 인간의 삶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먼저 종교는 모든 존재와 그 환경을 하나의 완성된 세계로 보고, 전일한 입장에서 파손된 인간의 삶을 치유해 간다는 것에 있다. 정치는 한 세계나 단체에 질서를 세우고 통합하며, 그 세계의 갈등해결을 위해 노력해가는 사회문화적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의 역할을 이렇게 본다면, 같은 목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의 법설처럼 자모와 엄부의 공동목표는 낙원세계 건설에 있다.한편 종교는 보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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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10.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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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6세기에 건립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대석불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도 나올 정도로 당시 성지순례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었다. 탈레반이 2001년 우상숭배라는 명목으로 파괴하여 세계의 비난이 쇄도했다. 오늘날 중국에는 문화혁명 이후 파괴됐던 불상이나 사원을 복원하는 일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다. 크기를 자랑하듯 세계 최대의 불상이라는 말이 동원되기도 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것의 정치문화적 효용성을 제외한다면, 자신의 왜소함을 극복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기 위해 우주의 주재자 또는 불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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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10.1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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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교가는 "영산회상 봄소식이 다시와 만생령의 자부이신 대종사"로, 학생회가는 "부처님 이 회상에 모인 우리는"으로 시작한다. 산회가는 "늘 도우시는 부처님 위에 계시사 우리를 지켜주시리"라는 후렴으로 끝난다. 원불교는 인도에서 성불하신 석가모니불의 영산회상을 이 시대에 구현한 것이다. 그 회상과 이 회상은 둘이 아니며, 석가모니불과 대종사님은 두 마음이 아니다. 대산종사는 "두 분이 아니시다"라고 단호하게 설파한다.우리는 아침저녁으로 심고를 올릴 때 '법신불 사은님!'이라고 부른다. 법신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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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10.0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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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각자(覺者, Buddha)는 눈뜬 사람,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삶의 의미와 우주의 진리를 꿰뚫은 사람이다. 이들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중생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설파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혜원스님은 "자신 스스로 깨닫고, 또한 능히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는 사람"(〈대승의장(大乘義章)〉)이라고 정의 내린다. 때문에 이들 대각을 한 사람들은 불일(佛日, 해와 같은 부처의 지혜 또는 그것이 생생약동하는 세계)이 어두워지면, 다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진리의 사명을 띤 사자(使者)다.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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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9.2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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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인류의 역사는 출가위의 심법이 개입된 역사다. 인간이 무지로부터 개명되고, 각자가 진리의 화현임을 깨우쳐 불합리·불공정·부조리한 인습과 제도로부터 탈출하게 된 것은 그들 출가위에 해당하는 선각자들의 빛나는 지혜와 목숨을 건 단호한 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계의 역사서는 시대를 바꾸고, 정의를 실현한 이 위대한 인물들과 민중의 고난의 흔적이다.이들 심법의 원형은 대공심(大空心)에 뿌리한 대공심(大公心)이다. 원불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기본적 인간형이다. 대산종사는 출가위를 "도심·공심·희열심으로 시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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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9.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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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법강항마위는 정사(正師)다. 바른 스승이다. 정(正)은 삿됨을 무너뜨리고 정법을 세우는 파사현정을 말한다. 삼독오욕의 마장과의 싸움에서 백전백승이다. 진리와 법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수행으로 영원히 빛나는 금강석 같은 불성을 찾아 굴린다. 그는 어떠한 운명에 처해 있을지라도 불법우위의 삶을 구현한다. 마침내 인천대중이 흠모하는 성위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대산상사는 "생활이 법도에 맞고 법과 공을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하므로 나와 남을 제도할 능력이 생기고, 위기를 당하여 법의 등대가 되는 위"(〈대산종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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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9.0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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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석존이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정진하고 있을 때, 마왕 파순이 다가와 물었다. "사문이여, 너는 대체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원하는가?", 이에 석존은 "내가 원하는 것은 슬픔도 근심도 없는 그곳, 안락하고 평화로운 열반성(涅槃城)에 이르는 것이며, 윤회의 길에 헤매면서 고뇌에 빠져 있는 이 중생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마침내 석존은 파순을 물리치며 성도하게 된다.마왕 파순의 원래 이름은 마라(Mara), 즉 죽이는 자 또는 파괴자라는 의미다. 이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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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8.2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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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신라의 의상대사가 〈화엄경〉의 진리를 축약한 '법성게(法性偈)'에는 "처음 발심했을 때가 곧 바른 깨달음(初發心時便正覺)"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불법에 대한 바른 믿음이 이 순간 세워졌을 때, 그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반드시 부처를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 수천 년 된 나무도 작은 씨앗이 싹튼 결과다. 그러한 거목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풍파도 견뎌낼 수 있는 힘과 딛고 있는 땅에 대한 굳은 신뢰가 있어야 한다.믿음은 세상에서 가장 큰 서원인 성불제중과 최고 법위인 대각여래위를 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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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8.2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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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문에 들어선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을 말한다. 과거와의 결별이다. 익숙한 것을 보내고, 낯선 것과 만나기 위함이다. 처음 만남에 두려움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 우리는 늘 새롭게 출발한다. 어제와 오늘은 분명히 다르다. 세계는 시시각각 변화한다. 새로운 마음은 세상이 늘 신선하다. 학교 입학을 할 때 축하와 축복을 하는 것처럼, 새 출발은 주위에서 박수와 격려의 대상이다. 인생을 새롭게 출발한다는 것, 보통급은 세상의 어떤 입문보다 가장 강렬하고도 새로운 인생 전환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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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8.1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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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법위등급은 대산종사가 "개교의 동기를 구현하기 위한 인격의 표준이며, 일원 세계를 건설하는 설계도이자 교리를 실천하는 이정표요, 여래위까지 올라가는 안내도이자 천여래 만보살을 배출할 교본"(〈대산종사법어〉 제5법위편 2장)이라고 설하는 것처럼, 부처의 삶을 지향하는 우리 자신을 매 순간 점검해야할 거울이자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불지를 향한 에너지인 모든 서원, 신앙, 수행, 공덕은 여기에 귀결된다.일찍이 여러 경전에서도 이 법위가 보살도(=부처가 되는 길)로써 제시됐다. 대승불교에서는 대표적으로 5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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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8.0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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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삶은 한 편의 음악이자 미술이며 영화와 같은 예술이다. 어떤 예술품도 삶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개개인은 스스로 삶의 예술가로서 자신의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다. 그 작품은 누구에게도 견줄 수 없는 자신만의 절대적 세계에 속한다. 그 각본의 두 구성 요소는 영과 육이다. 삶은 영육의 씨줄과 날줄이 엮어내는 위대한 교향악이다. 마치 잘 정비된 비행기를 운항에 능통한 기장이 멋진 비행으로 다음 행선지에 무사히 도착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우주가 출현한 이래 진리는 삶을, 삶은 진리를 떠나지 않았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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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7.2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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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현대사회를 사람들은 물신사회, 소비사회, 피로사회, 중독사회 등 다양하게 진단하며, 그러한 증상을 심각하게 알리고 있다. 지구의 문제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도달할 지점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맹목적으로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흡사 영화 '설국열차'와도 같다. 무한기관을 장착하고 언제 정차할지도 모르는 상태로 달리고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일정한 속도로 지구는 돌고 있지만, 지구의 문명은 인류가 분초 단위의 삶을 살도록 정교하게 설계되고 있다.중독사회는 스포츠, 알코올, 마약, 도박, 인터넷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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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7.1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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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지도인은 넓게는 스승, 교사, 선지식, 구루(Guru)를 말하며, 나아가 과거·현재·미래의 제불제성이 그 표본이다. 성현은 자신을 완성한 사람을 말한다. 즉 진리(천리)의 세계를 마음속에 확립한 분이다. 이분들의 특징은 한 마디로 지행합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앎이 행동과 직결되어 있다. '안다'는 의미는 실천과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말한다. 자신을 관통하는 통일된 인식과 실천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 앎을 지혜라고도 한다.성현의 또 다른 특징은 끊임없이 공부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공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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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7.0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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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동양에서는 우주가 음양의 상승원리에 의해 상생 혹은 상극의 기운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전자가 서로 살리는 기운이라면, 후자는 서로 충돌하는 기운이다. 가까운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잘 나타난다. 전생을 들여다보면 그 원인을 잘 알 수 있겠지만, 그런 능력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상생의 기운인 것 같으면서도 상극으로 돌아서는가 하면, 상극인 것 같으면서도 상생으로 나타나는 것을 예측하기도 어렵다.변방에 사는 노인과 말에 얽힌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행과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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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6.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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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의 핵심은 불법이 생활이며, 생활이 불법이라는 점이다. 지구상의 모든 진리는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삶을 떠난 불법이나 진리는 없다. 희망과 절망도, 천국과 지옥도 이 생활 속에 있다. 내 안의 주인공이 나의 마음과 육신을 움직여 펼쳐낸 것이 바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세계다. 생활은 우리 생명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소우주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모습이다. 생로병사·생주이멸·성주괴공의 무한반복도 이 생활의 일부다. 대우주는 결국 가(家)의 집합체다.따라서 마을과 국가와 세계는 이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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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6.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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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수신의 요법은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삼학수행을 말한다. 전통적인 계정혜 삼학의 근본과도 일치하며, 동양의 정신세계와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제1조, 시대를 따라 학문을 준비하라고 한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확충하고, 인류 진화에 따른 지혜를 갖추어 세계를 불국토로 만들어 가기 위한 것이다. 개인이 쌓아올린 삼학의 힘이 시대와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가는 사회적 삼학으로 승화되어야 진정한 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학문은 공자가 설하듯이 위기지학(爲己之學)이 아니라 위인지학(爲人之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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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2019.06.14 0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