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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한 때 들렀던 해외 어느 교당의 주임교무가 밤마다 오체투지 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스스로를 완전히 비우고, 모든 것을 법신불에게 바치는 행위가 바로 오체투지의 근본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참과 이참이 일치가 된 행위가 이 오체투지이기도 하다. 최근 유행하는 108배를 올리는 것도 같은 의미다. 108은 번뇌를 말한다. 번뇌인 한 생각으로 천국과 지옥을 결정한다. 사참을 통해 번뇌로 인한 죄업을 뉘우치는 일, 이참을 통해 모
정전
원익선 교무
2019.01.1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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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참회는 불교용어다. 그 연원은 석가모니불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매월 초하루나 보름이면 승가의 대중이 모여 포살(布薩, Posadha)을 진행했다. 전 대중 앞에서 장로가 먼저 포살의 의미를 설명하고, 오계, 십계, 250계의 조목 하나하나에 대해 청정한가를 묻는다. 세 번을 묻는 동안 그 계율을 어긴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참회하는 의미에서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렸다. 마지막엔 대중에게 다시 묻고 함께 참회의식을 가졌다. 이는 허물을 고백한 사람에 대한 배려였다.또 하나 자자(自恣, Pravaran
정전
원익선 교무
2019.01.0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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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참회야말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간을 끌어올리는 길이다. 사회에서 죄는 미워할지라도 인간을 미워하지 말라고 하는 말에는 진리가 숨어 있다. 죄는 잘못된 행위를 말한다. 죄(罪)라는 한자는 잘못을 저질러 그물에 걸렸다는 뜻이다.에서는 "오이를 심으면 오이가 나기 마련이니, 하늘의 법망이 넓고 넓어서 성긴 것 같아도 새지 아니한다"라는 말씀은 이러한 인간의 죄에 대한 인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자신의 업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마음과 그 마음이 잘못되었음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2.2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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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성지는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와 고산리 일대를 말한다. 소성리는 정산 송규 종사와 주산 송도성 종사 형제의 탄생 구도 성장지이고, 고산리는 정산종사 14대조부 충숙공 야계 송희규 선생이 자리를 잡은후 500년동안 세거해온 야성 송씨 집성촌이다. 정산종사 부친인 구산 송벽조 대희사가 결혼 후 소성리로 이주하여 정산, 주산종사를 낳아 기른 후, 원기3년(1918) 정산종사가 소태산 대종사 문하에 들어가게 되자, 대종사의 권유로 송벽조 교무가 원기4년(1919) 가족을 솔거하여 영광으로 이주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정산종사가 종법
사설
원불교신문
2018.12.1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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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나세윤] 올바른 장례문화 확산을 위해 원불교 청운회가 '바람직한 삶과 죽음'을 주제로 2차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이어 토론회를 주관한 서울교구 청운회는 만덕산훈련원 이양신 교령을 특강 강사로 초빙해, 원익선 교무의 발제, 김도공 교무와 김인진 교무를 토론자로 모셨다. 2일 오후3시 여의도교당에서 진행된 2차 토론회에 이덕우 서울청운회장은 "장례문화 토론회는 죽음과 사후의 문제가 아닌 현재,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다"며 "삶의 목적과 태도는 뚜렷한 생사관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번 토
교화
나세윤
2018.12.1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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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강법진 기자] 정헌율 익산시장은 지난 7월 시정운영방향 기자회견에서 '효 문화도시 익산'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익산시와 뜻을 함께한 사회복지법인 원광효도마을(이사장 오우성)은 2018 제10회 효 학술세미나의 주제를 '효 문화도시 익산시 추진당위성'으로 정하고 4일 익산시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회복지법인 원광효도마을이 주관하고 익산시가 후원한 이번 효 학술세미나는 기조강연에 익산역사문화회 김복현 회장의 '효문화 도시 익산의 발전방향'이 발표됐다. 2부에는
교화
강법진 기자
2018.12.1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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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생활 속에서 삼매를 경험한다면, 그 삶은 경전을 써내려 가는 행위가 된다. 삶이 곧 경전이 된다. 특히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그 경지를 드러내 보여준다. 파리의 오르셰 미술관에 소장된 밀레의 '만종'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끔 음악방송을 통해 나오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눈물 흘리기도 한다. 필자 또한 아침 출퇴근 시간에 차를 몰다가 바이올린 선율에 눈물을 훔친 적이 있다. 왜 우리는 예술 작품 속에서 감동을 얻는가.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2.1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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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일심은 분별과 집착이 없으며, 선악과 염정을 초월하고, 주객과 진속을 둘로 보지 않는 동시에 허공처럼 텅 비어 있으되 맑고 두렷하며, 일체를 파악하는 지혜의 능력과 세계를 하나로 품는 마음이다. 승조(僧肇)는 에서 "성인은 (반야의 지혜로써) 신령하다. 마음에 번뇌가 텅 비었으나 관조의 작용을 잃지 않는다. 형상도 명칭도 없기 때문에 관조로 작용을 해도 실지 그 자체의 텅 빈 마음을 잃지는 않는다"고 한다. 무시선법에서 정할 때 일심을 양성하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우리 내면의 원만구족하고 지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2.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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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강법진 기자] 원불교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이하 원불교비대위)가 2년간의 평화행동을 돌아보며 평가의 시간을 가졌다. 11월22일 중앙총부 법은관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미니세미나 '원불교 성주성지수호 활동을 반추하다'는 원불교비대위가 주관하고 재가출가 교도 및 성주, 김천 등 평화시민들이 참여했다. 세미나는 원광대학교 정역원 원익선 교무가 '원불교 사드철폐운동의 의의와 방향'에 대해 발제하고, 전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와 서울대종교문제연구소 김혜월 교도가 토론자로 나섰다. 원 교무는 "사드철폐운동은
교화
강법진 기자
2018.12.0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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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평화를 위해 각지에서 노력하고 있는 종교인과 학자들이 평화의 상징이 되고 있는 소성리에 함께 모여 아시아종교평화학회 준비를 위한 학술대회를 열었다. 16일 성주삼동연수원에서 열린 '종교와 평화구축' 학술대회는 종교평화를 위한 토론 모임 레페스포럼과 최근 발족한 원불교평화행동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원불교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가 후원했다. 원불교평화행동 김상문 고문은 "평화의 성지 성주에서 열리는 오늘의 학술대회가 아시아종교평화학회 창립으로 순조롭게 이어지고 레페스포럼과 원불교평화행동이 힘을 합해
교화
이은전 기자
2018.11.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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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진리를 본체와 현상으로 나눠 보는 것은 '현실 너머에 무엇이 있지 않을까'하는 이성적인 사고 때문이다. 서양은 플라톤 이래, 동양은 유불선 삼교가 함께 진리를 두 세계로 파악하고 그 관계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지 고민했다. 이를 실제와 가상, 원본과 복사, 유와 무와 체용, 이와 사, 진공과 묘유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진리계의 두 세계가 인간의 마음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다고 봤다. 두 세계로 나눠진 진리는 하나로 통합된다. 일원상의 진리는 그 통합된 세계를 말한다. 그리고 일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1.2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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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이하 원불교대책위)가 2년여 시간을 돌아보며 성주 소성리에서 펼쳐진 평화행동의 의의와 방향에 대해 토론한다. 22일 오전10시30분 익산성지 법은관대회의실에서 진행되는 원불교 평화행동 미니세미나는 기도식과 평화행동 영상 시청으로 문을 열고, 원광대학교 정역원 원익선 교무의 ‘성주성지수호 활동의 의의와 방향’에 대한 주제발표가 진행된다. 토론자로는 평화운동가 조헌정 전 향린교회 담임목사와 서울대종교문제연구소 김혜월 박사가 참여한다.원불교대책위측는 "평화의 성자 정산종사 탄생지요 구도지인 성주 소성리에 불법
온라인뉴스
강법진 기자
2018.11.2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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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삶은 선(禪)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사실은 누구나 선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것을 자각하고,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가, 그렇지 않고 그저 운명에 맡기고 사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차를 운전하는 예를 들어보자. 그 이유는 운전이 인생의 축소판인 동시에, 선이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지금 차를 몰기 시작했다고 가정하자. 도로는 삶의 한 가운데를 의미한다. 인생의 길을 가는 것이다. 골목, 국도 혹은 고속도로인가에 따라 속도가 다르다. 국도에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1.1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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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정기훈련 중에 기록하는 일기가 정기일기다. 그 핵심은 심신작용처리건과 감각감상이다. 심신작용은 인과의 법칙을 자기화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일의 주종·선후·본말과 시비이해를 잘 파악하여 실천했는가라는 자기반성을 불러낸다. 자신의 삶을 적극적인 의지로 행복하게 만들어 가기 위한 것이다. 행복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인과를 어떻게 삶 속에서 잘 활용했는가, 하는 점이 요체다. 예를 들어 보자. 맛있는 사과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한 알의 사과 씨앗을 땅에 심어야 한다. 그 씨앗 속에는 사과라는 인(因)이 들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1.0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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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중국불교협회와 중화중교문화교류협회의 주최로 '제5회 세계불교포럼'이 진행됐다. 10월29일~30일 중국 푸젠성 푸티엔시 컨벤션센터에서 이뤄진 세계불교포럼에는 원불교를 대표해 백현린 국제부장과 김길선 중국교구장, 김성택 원로교무, 원익선 교무가 참석했고, 한국을 대표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수석부회장 문덕 스님을 비롯해 스님들과 기자단 40여 명이 참석했다.58개국 1000여 명이 초청돼 이틀 동안 진행된 이번 세계불교포럼에서는 '교류하며 서로 배우고, 중도로 원만 융화하자(交流好感 中道圓
교화
유원경 기자
2018.11.0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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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상시일기의 핵심은 유무념 공부다. 상시, 즉 일상의 공부는 일상수행의 요법과 상시응용 및 교당내왕시 주의사항을 얼마나 온전한 생각으로 실천했는가로 집약된다. 아니 〈정전〉을 비롯해 모든 성현의 가르침을 얼마나 내 삶에 투영하고 풍요롭게 가꾸어가고 있는가, 라는 신앙과 수행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유무념 공부는 상시공부의 핵심이다. 유무념 공부 하나만으로도 불지에 뛰어오를 수 있다. 상시일기에서 이를 기재하는 것은 순간순간의 진급을 점검하는 것이다. 유념은 깨어있는 자성에 기반한다. 그것은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1.0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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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삶의 흔적은 허공에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굳이 일기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핵심은 영육쌍전과 이사병행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으로 실천해 자신의 삶을 복혜 구족한 낙원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일기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발명품이다. 동서양에서 일기는 수입·지출의 대조를 위한 기록에서 출발했다. 그것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자기성찰을 위한 기록으로 변모했다. 예를 들자면, 16세기 말부터 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 확립과 자아성찰을 위한 일기를 쓰고 있다. 신앙심을 깊게 하기 위한 방편인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0.2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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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의두요목 5조 "만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하나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의 원문이다. 〈벽암록〉에서 조주선사, 〈선요〉에서 고봉선사에 의해 유명해진 공안이다. 〈대종경〉 성리품에서는 소태산 대종사가 제자들에게 과제로 내고 있다. 전통 선방에서는 화두 중 으뜸으로 치고 있다. 필자도 평생 이 의두를 들고 있다. 좌선 때, 차를 타고 가거나 한가할 때, 때로 꿈속에서도 불현듯 이 의두를 풀어보곤 한다. 핵심 전략은 이 언어로 표현된 사구(死句, 죽어있는 말)가 활구(活句, 살아있는 말, 즉 생생한 현실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0.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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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수행은 무엇인가. 만법의 근본인 한 마음을 밝혀 대각과 해탈, 그리고 중도에 기반한 부처의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 혜명의 등불로 세상을 밝혀 모든 이웃도 그 세계에 들어와 함께 행복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공안과 화두, 의두와 성리 또한 그 길로 가는 첩경(捷徑, 지름길)이다. 그런데 불법을 계승한 원불교는 불가(佛家)에서 잘 쓰지 않는 용어인 의두와 성리를 새롭게 내놓았다. 사실 근본은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불법의 현대화를 지향한 소태산 대종사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의두·성리는 소
정전
원익선 교무
2018.10.04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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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논리철학논고〉)고 했다. 전자는 철학의 영역으로 수학·과학처럼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세계를 뜻하며, 후자는 종교의 영역으로 신·진리는 말로써 드러낼 수 없기에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본 것이다.칸트 또한 종교·윤리·예술은 이성의 한계 너머에 있다고 보았다. 결국 종교적 가르침은 실천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말로써 설명해봐야 무의미하다고 본 것이다. 공안·화두는 이처럼 진실을 체득한 활
정전
원익선 교무
2018.09.20 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