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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8년전 원기 51년(1966년), 그 당시 서울에는 서울 ㆍ 종로 ㆍ 원남의 세 교당밖에 청년회가 없던 시절. 그 3교당 청년회는 연합회를 결성하고(회장 : 장동윤) 월1회 연합청년 합동법회를 보았던 기록을 살필 수 있다.그 당시 연합청년회는 소수의 교당청년회보다 3교당이 통합된 뭉쳐진 힘을 바탕하여 청년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
교화
박 청 수(6)
1984.10.0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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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어느 나라 어느 부모치고 어린이 보살피는 일을 하룬들 생각지 않는 날이 있을까마는 우선 발등에 떨어진 일에 쫓기거나 형편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것이 어린이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잘 사는 나라에서는 그 풍요한 환경 때문에 일어나는 어린이 문제가 있게 마련이고, 못 사는 나라에서는 그 불우한 처지 때문에 발생하
교화
김인강
1979.03.2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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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회 임시 수위단회가 9월 13일 교정원회의실에서 열리어 교정원 각 부장들로부터 교정 전반에 대한 보고를 듣고 현안 문제를 토의했다.대산 종법사는 개회사에서 『교단의 발전에 따라 영산성지의 성역화 작업을 서둘러 추진하고 해외 교구 교화 확창에 관심을 두며 국내 교화의 안정을 위해 서울교구의 활동이 활발하여져야 한다.』고 했다.이 자리에서 송영봉 미주교감
교화
원불교신문
1978.09.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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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교당은 4월 30일 창립 제22주년 기념법회를 열고 종로교당 창립의 초석이 되었던 개성교당 교도 27명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가졌다. 6· 25 사변으로 육신의 고향과 마음의 고향을 함께 잃은 개성교도들은 어려운 피난시절에도 개성교당의 재건을 잊은 적이 없었으나 38선이 막히어 개성으로 돌아갈 수 없자 함께 모여 법회를 보았
교화
원불교신문
1978.05.1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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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에서 보면 삶에는 연습이 없다고 한다. 같은 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과정에서 보면 어떤 때는 실수가 허용도고 반복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는가 하면, 어느 순간은 중요한 결과를 좌우하는 결정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나에게 있어서도 그간의 생활은 가능성이라는 교육적 견지에서 실수가 허용되고 너그러움과 격려
교화
이혜진
1978.04.2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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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교당 최행덕 주무는 지난 9월 3일에 육영장학금 1백만 원과 법은 기금 50만원을 기탁하여 특별회원에서 공덕회원이 되었다.
교화
원불교신문
1977.09.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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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교도회장 임이원, 주무 강도심명, 조성화, 김연도, 순교 마선공, 박정익, 주정선, 박정수, 김자덕 ▶서면=고문 박월정심, 한도성, 교도회장 김법운, 교도부회장 이창환, 정인정, 주무 강덕성화, 박기만, 박영심, 박귀인, 양만규, 김성진, 김계연 ▶답십리=교도부회장 고성광 ▶신암=교도회장 유정국 ▶삼례=주무 곽이낙행, 김희정 ▶화포=교도회장 장청봉
교화
원불교신문
1977.06.1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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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유진덕행, 하용덕행, 이인덕행(이상 주무) 이상 3월 12일자 ▶포항=장수원(고문), 이양은9서기), 김지성행, 이진환(이상 순교), 한조경, 김순경, 김충신, 김도신, 김현정, 김경원, 김요원(이상 주무) ▶봉황=김법순(교도회장) ▶동광주=최인선, 임법성화, 장동주(이상 주무) ▶송천=김용원(교도회장), 김귀법화(교도부회장), 서덕심화, 김정인,
교화
원불교신문
1977.04.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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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세계의 건설, 인간양심의 거울, 이해 봉사의 풍토를 교시로 삼고 대각개교60돌을 맞이한 원불교에 의하면 많은 교도들이 지역사회 발전에 모범활동을 전개하여 일선교화에 심혈을 경주하면서 국민의 정신전력 강화에 공헌하고 있는 점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교육현장에서 또한 일상생활에서 모든 것을 보는데 正見과 善見이 있고 誤見 曲見을 합하여 四見이라한다. 첫째,
교화
홍대용 <경북 성주 중앙국민학교 교장>
1976.04.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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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푸른 목장에서 한가히 풀을 뜯고 있는 소의 무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도 따라서 넓고 한가해 짐은 이곳 제주도에 와서 느끼는 또 하나의 감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대산종법사님의 법문인 大圓見性 大圓養性 大圓率性을 표준삼아 공부해 가는 가운데 대중정행을 나툴 수 있는 실천강령을 3항과 3덕으로 표준잡아 보았습니다. 3항은 항복받아야 할 세 가지 표준이
교화
원불교신문
1975.11.2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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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당 이정은 교무와 선일덕화 김순덕 김명중 김의윤씨는 구랍 28일 보육원을 방문 털 양발 1백3켤레와 과자 고기반찬 등을 직접원아들에게 전했다. 그런데 이 선물들은 앞의 4인 가운데한사람이 마련했다고 할 뿐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이리시 중앙동 이유진씨는 1만원에 상당하는 학용품 양발 사과 등을 전해왔다. 이씨는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보호기관에 선물
교화
원불교신문
1975.01.2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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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학생회 1만원 ▽서면청년회 1만원 ▽동래 1만원 ▽경주 5천원 ▽남부민 1만원 ▽부산진 5천원 ▽영도 6천6백 원 연탄 2백장 ▽광안동 2천원 ▽천안 이경식씨 5천원 ▽군산 2천원 ▽원남 양성도화씨 입교 기념 3천원 ▽원남 최행덕씨 5천원 ▽서울 ▽영광 ▽삼덕동 ▽여수 ▽속초 ▽조전권 법사 ▽김이현씨 ▽경주(이상 물품) 또한 초량교당에서는 운반용 자전
교화
원불교신문
1975.01.2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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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양성에 어두운 구름」이란 제목으로 교단에서의 인재양성이 경제적 난관에 부딪쳐 있다는 기사(본조 지난해 9월 10일자 1면)가 보도되자 교단 각계에서 적극 호응, 많은 장학후원의 뜻이 육영부에 전해왔다. 다음은 그 명단.▽ 김법계화(김해) ▽ 백인명(종로) ▽ 오철환(군산) ▽ 전경화(소성) ▽ 손덕선(총부) ▽ 전광순(전주) ▽ 김도영(사직) ▽ 전은
교화
원불교신문
1973.02.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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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하루 일과를 지내고 싶다. 오랜 세월 종교생활로서 법을 듣고 많은 것을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상식으로 알아진 것을 간직하고 활용해 쓰고 있는 것을 새해에서도 쉬지 않고 노력할 예정이다.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거주하며 시간은 너무 많은 편이다. 자기 몸 건강관리로 일과는 시작된다. 가벼운 요가 운동을 하고 법신불과 대화의 심고로써 감
교화
최행덕
1973.01.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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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에 입교한 지도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앞으로 남은 여생을 바라볼 때 이 세상에 나와서 지금까지 제반사가 순조로웠고 주위의 인연들도 모두 화목하였으며 경제적으로도 별 고난을 당하지 않고 평탄하고 즐거운 생애였다. 그 중에서도 큰 소득은 원불교 신앙생활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생활신조는 「즐거움에 넘치지 않고 괴로움에 굴하지 않으리.」
교화
최행덕
1973.01.1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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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구 청년연합회= 지난 9월 4일 원남교당에서 제2차 임시총회를 갖고, 운영위원과 지도위원을 위촉하는 한편 일부 임원진도 개선했다.① 임원 개선김호영 회장과 조정남 조종인 지도천 황의수 박은도 부회장은 유임되고 각 부 부차장진이 다음과 같이 개선되었다.총무부장= 권오영 교화부장= 이희선 문공부장= 이우익 사업부장= 구흥종 대학부장= 박정원② 지도 위
교화
원불교신문
1971.10.0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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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56년 3월 31일 오후 3시 중앙총부 대각전은 전국 교당에서 모인 1천여 교우로 초만원을 이루었다.대각전은 우레 같은 박수소리로 떠나갈 듯 했다. 선망의 빛으로 가득했다. 교화 3대 목표추진운동 종합시상식이 시작된 순간이었다.지방별 종합 성적이 발표되었다. 1등에 광주와 종로교당. 영광의 상패가 수여됐다. 박수소리가 더욱 요란했다.종로는 원기 48년
교화
원불교신문
1971.07.1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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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반백년 기념사업회 일환으로 서울에 원불교회관(가칭) 설립을 위한 원불교 회관 건립추진위원회 창립총회가 지난 7월 12일 종로지부에서 개최되었다.이날 오후 2시 박장식 교정원장을 비롯 고산법사, 팔타원 법사, 문동현 중앙교의회의장 박동현 부의장 그리고 서울지구 교무와 지부장단 요인 29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제성씨 사회로 개회, 박노선(동현) 임시 위원장은
교화
원불교신문
1970.08.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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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일에 상경하셨던 종법사님은 그간 원남지부와 우이동 산장(최행덕 교도 별장)에서 유가(留駕)하시면서 지압치료에 효과를 보시고 9월 10일에 환가하셨다.서울에 유가하시면서 종법사님은 경기도와 서울 일대 각 교당을 순방하셨으며, 서울지방의 많은 교도들을 대동하시고 아산의 현충사 참배와 평소 친교가 계셨던 백범 김구 선생 동상도 참배하시고 서울지구 합
교화
원불교신문
1969.09.15 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