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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正)타원 성성원 법사님은 전무출신을 세 번이나 하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부득이 한 사정 때문에 내생 서원으로 보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숨은 수행인.『원기 9년에 대종사님께서 서울에 오셨을 땐 남녀유별이라는 풍습으로 뵙지 못하고 11년에야 뵙게 되었고 융타원님 공타원님과 함께 은녀 제1호의 영광을 차지했지요. 그러나 시가 어른들의 반대로 마음 놓고 교당
교화
정타원
1978.04.2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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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교리학교가 세 곳에서 입학식을 갖고 문을 열었다.광주· 이리교구가 3월 20일, 정읍교구가 4월 2일 학생들을 모집 입학식을 갖고 공부하는 교도, 공부하는 교단으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다.◇ 광주교구광주교구 교리학교가(학교장· 정진숙 교구장) 3월 20일 오전 11시 입학식을 갖고 개교되었다.9개 교당에서 54명이 입학한 광주
교화
원불교신문
1978.04.1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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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박동현 법사>재가 수위단원인 송산 박동현 법사가 4월 3일 새벽 1시 서울 자택에서 열반하여 5일 오전 8시 30분 종로교당에서 발인식을 교회연합장으로 갖고 오후 2시에는 전주교당에서 영결식을 올린 뒤 영구는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선산에 안치되었다.「박」법사는 1922년 8월 30일 전북 전주시 중노송동 1가에서 부친 박창봉 선생과
교화
원불교신문
1978.04.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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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당 제가 입교한 지 어느덧 십여 년. 대종사님의 법을 알고 초발심이 났을 땐 무척 열성을 부려 교무님의 전무출신 권유도 여러 번 받아왔으니다만 그 땐 나의 사고방식이 어리석었던지 아니면 법연이 지중하지 못했는지 출가수도자 보다는 재가수동에 비중이 컸습니다.저는 다행히 성품이 온후하고 이해성이 많은 남편을 맞아 신앙생활을 꾸준히 지속할 수가 있었습니다.
교화
나정주
1978.03.1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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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것 없이 주는 사람이 되자. 잘잘못에 대해 당하는 사람이 되자. 그래서 무아봉공으로 생활하자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완전히 파악하는 일입니다. 처지에 안분할 줄 아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며 큰 부자이지요.』여타원 김지원행 법사님의 생활철학이다. 일찍이 경남여고를 졸업하고 장귀안씨와 결혼, 다복한 가정생활을 주위
교화
원불교신문
1978.03.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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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근본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생도 잘 살고 내 생도 잘 사는 지금길이 되지요.』1912년 전북 임실 신안 마을에서 농부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해 온 희산 오철환 법사님.분주한 사업장에서 삼학 수행의 적공을 더욱 철저히 쌓아가는 수도자의 자세로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는 거진출진의 사표.
교화
원불교신문
1978.02.2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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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학교 개설을 위한 전국 교구 사무장 회의가 2월 15일 교화부 주관으로 중앙총부에서 열리었다.박정훈 교화부장은 교리학교 개설에 따른 교단의 정책을 설명하고 각 교구에서 적극 추진할 것을 강조했다.교리학교 개설추지는 ① 날로 발전하는 교세 확창에 따른 교역자의 부족을 타개하기 위하여 교역자 보조 및 교역자 대행을 할 수 있는 재가교역자(가칭)의 요원 확보
교화
원불교신문
1978.02.2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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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교조, 수운 최제우(1824~ 1864)는 순조 24년 10월 28일에 지금의 경북 월성군 견곡면 구정리에서 출생했다. 제우라는 이름은 어리석은 세상 사람을 구제하려는 결심을 다짐하기 위해 스스로 고친 이름이다. 고치기 이전의 이름은 제선이오, 호는 수운제라 하고 관변기록엔 아명이 복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수운의 사상적 기반은 정통적인 주자학파의 민
교화
김승환
1978.02.1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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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김인철 실장, 정성진 선원장>제74차 임시 수위단회의가 1월 27일 삼동원에서 열리어 그간 공석 중인 기획실장에 김인철 수위단회 사무처장을 임명했다.또한 근년부터 중앙총부 구내 선 도량화와 중앙총부를 내왕하는 지방교도나 단기간 총부에 머무르는 교도들의 공부를 위해 신설되는 상주 선원장에는 장성진 중앙훈련원 교감을 임명했다.상주 선원은
교화
원불교신문
1978.02.1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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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어머니 합창단이 부산시장기 쟁탈 새마을 합창경연대회서 영예의 우승을 차지했다.지난 12월 22일 부산시와 부산 문화 텔레비전이 공동 주최한 「우리 노래 밝은 노?뮈Ц?결선에서 황금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출연한 65명의 부산교구 어머니 합창단은 「추천??그네 노래)를
교화
원불교신문
1978.01.2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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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도소 재소자 1백 50명의 득도식이 12월 11일 춘천교도소 강당에서 있었다.득도식에 참가한 1백 50명의 재소자는 춘천교도소에서 1인 1도 운동을 전개 매일 오후 3시부터 1시간동안 교리와 설법 등을 듣게 하고 있는데 이 시간을 통하여 원불교에 입교한 사람들이다.이들은 이날 보통급 십계문이 새겨진 증서를 받았다.서울 보화당에서는 십계문을 받은 재소자
교화
원불교신문
1977.12.2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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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선생님들 안녕하십니까? 금년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긴 세월 동안 바쁘신 중 노고가 많으시고 인간사는 매양 만능이 못되오니 어려우심도 많으셨으리라 믿습니다.본인은 원불교에 입교한 지 20년 이상 된 교도입니다만 사업 면에 백지인 지라 아무런 존재조차 없습니다. 공부 역시 실천은 잘못 하오나 다만 대종사님 대법에 청하와는 제법 알 만 하옵기에 감명 깊이
교화
원불교신문
1977.12.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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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박영식 선생이 12월 6일 열반. 8일 오후 2시 중앙총부에서 교회연합장으로 발인되었다.선생은 1897년 전북 남원군 수지면 호곡리에서 탄생, 1935년에 입교, 1958년에 출가하였다. 유일학림 강사, 중앙선원 교무, 원광대학 교수, 중앙총부 순예감 등 12년간 교단에 봉직하였고, 1970년부터 중앙수양원에 입원하여 수양에 전념했다.또한 선생은 「일
교화
원불교신문
1977.12.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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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손정윤 □ 본사주필 전팔근 □ 원광대 사대학장 □ 해외포교 연구소장>○… 대산 종법사는 연초에 교단 2회 말까지 해외교당 1백 개 설립을 교단정책으로 천명했으며, 지난 11월에는 세계 종교 연합 기구 창설을 제안했다. 그럼 교단의 해외교화는 지금 어디까지 왔나? 전팔근 해외포교연구소장과의 대담을 통해 조망해 본다. &he
교화
원불교신문
1977.12.1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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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 박광전 법사는 10월 30일부터 1주일간 필리핀에서 열린 세계 침술학술회의에 참석, 필리핀의 교육계와 종교계를 둘러보고 귀국 길에 일본에 들려 원불교교화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보고 돌아왔다. 박 법사는 이창빈 한의대학장(세계침술학술회의 의장)과 함께 초청되어 본 회의에서 축사를 하였다. 침술학술회의를 중심으로 원광대와 교단의 역할 등을 들어 본다. -
교화
원불교신문
1977.11.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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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과 난경을 거듭하던 군산교당 초창 당시, 개인의 사업체를 다 팔아서라도 교당을 일으키려 고군분투했던 희산 오철환 대호법. 이 불굴의 의지는 전 교단적으로 확대되어 원기 59년 1월 6일 교화사업회 창립이사장의 중직을 맡게 되었고 개척교화에 앞장서서 그 소임을 다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희산 대호법은 1912년 전북 임실군 신안리에서 탄생하였다. 17세에
교화
원불교신문
1977.11.1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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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근면 예지와 투철한 신념으로 이 공부 이 사업에 정진하여 오늘의 영광을 가져온 양타원 송경심 대호법은 1917년(원기 2)경남 울주군 하경면에서 탄생하였다. 1935년(원기 20)경남여고를 졸업하고 19세에 정해영씨(법명 도진)와 결혼, 원기 36년 6월 21일 나용선씨를 연원으로 초량교당에서 입교를 하게 되었다. 여러 기업체를 운영하는 대 사업가의
교화
원불교신문
1977.11.1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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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 계몽 팻말제기교당학생회(회장 : 박용성)에서는 자연보호 계몽을 위하여 「초목도 내 몸같이」라는 계몽 표어를 쓴 팻말 2백 개를 만들어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는 우이동에서 백운대 정상까지 나무에 부착, 나무와 풀을 함부로 꺽지 않는 마음을 심어주었다.송천 청년회 창립 송천교당청년회가 9월 18일 결성 초대회장에 이종배, 부회장에 유호현이 선임됐다.무주
교화
원불교신문
1977.10.2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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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기 56년 10월 7일 영모전 낙성 봉고제새 회상을 열 준비 1919년(원기 4년) 10월 22일 대종사는 부안군 산내면 봉래산 월명암을 찾았다. 대종사가 1916년(원기 3년) 영산 해변을 막는 방언공사를 했고 이듬해에 3월부터 9인 제자들에게 기도를 실시 마침내 백지혈인이 성사를 나타냈다. 이와 같이 새 회상 창립의 정신적 기초를 다진 대종
교화
원불교신문
1977.10.1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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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산 조준곡 법사가 10월 6일 아침 중앙요양원에서 열반, 8일 교회연합장으로 총부에서 장례식을 거행했다. 앙산 법사는 출가전 고향인 금평에 교당을 세우는데 주역을 맡고 원기 33년 10월에 남원교당 순교로 전무출신을 출발하여 30년간 일선 교당의 교무와 순교감을 역임하면서 일선 교화에 헌신하여 왔다. 대산 종법사는 앙산 법사의 부음을 듣고 중앙요양원 빈소
교화
원불교신문
1977.10.10 1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