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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요양원에 살면서 몸이 굳어져 죽을 뻔 했을 때, '좌산 상사님과 인연이 깊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지금도 들곤 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좌산 상사님을 직접 모시게 된 것 같아서다.원기79년 11월6일은 종법사 대사식이 거행됐다. 대산상사로부터 좌산 종법사가 임명되는 그 때 나는 '저 어른이 나를 살려주셨다. 저런 어른을 평생 모시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덕무로서 출가식도 얼마남지 않았을 때다. 공익부에서는 '예비덕무 13년동안 휴가 한번 못주었으니, 정토
교화자의 삶
고도길 덕무
2017.04.0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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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부 오기 전 정토를 만나 결혼했는데, 공익부에서 남자요양원 방 한 칸을 내줘 함께 살았다. 당시 한 달 용금이 8만원이었다. 그 돈으로는 애들을 가르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활고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정토도 자존심이 강해서 친정에 손벌리기 싫어했다.언젠가 출근하는데 아침에 라면이 나왔다. "아침에 라면이 뭐냐"며 정토와 싸웠다. 정토는 울면서 "쌀이 다 떨어졌다"고 말했다. 오늘 아침 남편에게 라면을 끊여 내놓기까지 정토 본인은 매끼를 라면 하나로 버틴 것이다. 마음이 참 무거웠다.어느 날 밤에 깊은 잠을 들기 어려웠다. 위에서
교화자의 삶
고도길 덕무
2017.03.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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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부에 살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교무님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살다보니 교무님들의 단점도 보이고 근무하는 원광한의원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보따리를 몇 번이나 쌌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같이 근무하던 약사선생님이 "도길아! 얘기 좀 하자" 하면서 여러번 붙잡곤 했다. 이러한 나의 사정을 공익부장님이 아시고, 내 방을 남자요양원으로 옮겨주었다.총부에 적응하느라 애쓰면서 사는 지 1년쯤 지났을 때다. 총부식당에서 저녁밥을 먹고 방으로 들어와서 옷을 벗는데 지갑이
교화자의 삶
고도길 덕무
2017.03.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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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원래 증산교 집안이었다. 어릴적 배운 증산교 주문을 아직도 잊지 않고 다 외울 정도다. 경상도 경주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한의원을 크게 하셨다. 용하다 소문이 나니 증산교도 한 분이 전라도에서 여기까지 할아버지를 교화하러 왔다. 원평교당 뒤에는 당시 보화교 증산도파가 있었는데 나중에 할아버지가 교주를 몇 번 만나시면서 가족 모두가 원평으로 이사오게 됐다.그런데 어느날 할아버지는 갑자기 혈압으로 열반하시게 된다. 증산교에 전재산 다 바치고, 할아버지도 갑자기 열반하시니 아버지도 홧병으로 5년만에 열반하셨다. 그러다보니 집
교화자의 삶
고도길 덕무
2017.03.0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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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마음대조 공부방'에서 일기를 기재하고 스승님께 문답감정 공부를 하면서 학교에서는 상담부장이라는 업무를 맡게 됐다.상담부장을 하며 만난 학생들은 학습의욕이 없고 수업시간에 잠만 자거나 음주, 흡연으로 가정에서조차 부끄러운 존재로 비친 아이들이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룹을 지어 다니며 힘을 과시하고, 친구, 선후배, 심지어 선생님들에게도 과한 언행으로 대하는 요주의 학생들이었다.나는 이때 이 아이들이 '학생 부처님들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마음공부 상담을 시도했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인정해
교화자의 삶
김정 원무
2017.02.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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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 사람을 쓰실 때에는 매양 그 신성과 공심과 실행을 물으신 다음 아는 것과 재주를 물으시니라.' (〈대종경〉 실시품40) 오늘도 조효경 교무는 법문 말씀을 보내줬다. 퇴임 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3년째 법문을 보내주고 있다.처음 조효경 교무의 정성스러운 설법은 샘물 신심인 나를 교당에 뿌리내리게 해줬다. 그리고 늘 공부가 부족해 사양해 오던 원무 지원도 "마음만 있으면 저절로 공부는 된다"는 말씀에 원기97년 영등교당에서 원무 사령을 받게 됐다.첫 원무 훈련에 참석해 회화 시간을 가졌다. 원무 선배들의 신심,
교화자의 삶
김정 원무
2017.02.1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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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학생 부처님들을 만나면서 마음공부의 필요성이 더 느껴졌다. 그래서 영산선학대학교의 마음대조 공부를 통한 인성교육 직무연수도 받고, 2011년 9월부터 원창학원 인성교육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인성실무위원으로 참여하게 됐다.법인에서 2000년 '인성교육 원년의 해'를 선포하고 2년여의 예비과정을 거쳐 원창학원 건학정신 실천도해를 만드는 작업을 착수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수십 차례 회의와 협의, 자문을 거쳐 체계화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하고자 했다.그리하여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5개 학교의 원무, 정토, 마
교화자의 삶
김정 원무
2017.01.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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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곳은 늘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20여 년전, 내가 재직하고 있던 학교는 일반계 고등학교 진학을 실패한 학생과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패배의식과 피해의식, 그리고 목표상실 등이 팽배해 수업에 대한 의욕도 약하고 일부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거침없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이런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지만 각자의 문제로 받아들이며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여교사들은 수업시간에 빗나간 학생들의 언행으로 자괴감이 든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교화자의 삶
김정 원무
2017.01.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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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가 스승과 제자 간 이어지는 법맥이 아닐까? 유아시절 대산종사가 머물던 마당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학창시절 배내골에서 좌산상사의 무릎에 앉아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 역시 생생하다. 만면에 웃음을 띠며 어린 제자들을 마주하는 인자한 스승님들의 얼굴은 내 마음이 잠잠해질 때마다 떠오른다. 나는 군 전역 후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 집중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무대 뒤에서 일원상서원문을 읊조리곤 했다. 그것은 스승님들이 인자한 미소로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마음에 새겼던 가르침을 잊지
교화자의 삶
김계원 도무
2016.12.0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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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98년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출가식을 했다. 원불교학과 졸업 후 10여 년이 지나서다. 출가식이 늦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 마지막 휴가를 고향집이 아닌 한국 공연예술과 서울 대학로에서 보냈다. 당시 대학 다닐 때 총부 서원관에서 받은 은혜들, 그리고 군복무하는 가운데 열심히 갈고 닦은 튼튼한 심신을 가지고 극단 오디션장으로 향하던 힘찬 발걸음이 떠오른다.대학로는 문화예술교화를 준비해오던 내겐 꿈을 향해 진일보하는 로망의 장소였던 것이다. 대학로 이랑씨어터 극단원으로 오디션 합격 후 부대로 복귀해 동기
교화자의 삶
김계원 도무
2016.11.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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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일원가족으로 나는 전무출신 김대승 교무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일원가족에서 태어나는 것은 대종사의 대도정법, 법신불 사은의 가호를 받은 피은자 중에서도 사은의 혜택을 오롯이 제대로 받은 종결자, 탑랭킹 순위에 들어간다며 나름 자부하며 살아오고 있다. 어머니 뱃...
교화자의 삶
김계원 도무
2016.11.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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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교당은 수요선방이 4년째 열리고 있다. 처음 송천곤 부교무 지도로 '입정-절수행-좌선-의두-회화'순으로 진행해왔다. 선방을 열어 시작할 수 있었고, 지도해 주었던 교무님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더 감사한 일은 이러한 소중한 수요선방을 4년째 이끌며 지켜낸 우연아...
교화자의 삶
이형열 원무
2016.11.1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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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태어나면서 6명 가족이 같이 입교했다. 교당은 다니지만 가족들은 원불교가 아직 종교로써 와 닿지 못했다.아내는 개신교를 오래 다녔던 터라 믿고 의지하는 타력신앙에 길들여져 자타력병진 신앙길이 여전히 어색한 것 같다. 하지만 원불교 신앙으로 남편이 조금씩 변화되어...
교화자의 삶
이형열 원무
2016.11.0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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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천여 명이나 되는 지인들에게 문자로 법문공양을 해오고 있다. 원무로서 나만의 교화법이다. 문자 보내는 데에도 원칙이 있다. 법문 문자는 40자 이상을 넘지 않는다. 또 점심시간인 12시~1시에 맞춰 보낸다. 원무로서 교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장에서 근무하는...
교화자의 삶
이형열 원무
2016.10.2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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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전라남도 보성군 미력면(구 지명 미륵면) 도개리로 '미륵이 도를 여는곳'의 뜻을 가진 곳이었지만 내가 태어난 해까지 교회, 절 등 종교시설이라곤 하나도 없는 종교 청정 지역이었다. 마을에 당골네가 들어와도 몇년을 못 버티고 자리를 팔고 나가는 무종교 고장이다...
교화자의 삶
이형열 원무
2016.10.1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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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 있든지 늘 초심을 생각하고 출가한 목적을 생각할 때마다 공부심을 놓을 수 없었다. '공심(公心)은 공부심에서 나온다'고 말씀했다.나는 업무가 아무리 많아도 항상 교리공부를 놓지 않고 있다. 경전과 법문, 스승님 강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고...
교화자의 삶
권덕천 덕무
2016.10.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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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교구에 살면서 많은 교무님들을 만났다. 그 교무님들을 뵈면서 전무출신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배우고, 어느 것이 정의이고 아닌지 알게 됐다. 물론 경계가 적지 않았다. 여러 경계를 지내다보니 이 자리는 덕무가 있을 자리는 아닌 것 같았다. 덕무는 일선 현장에서, 직접...
교화자의 삶
권덕천 덕무
2016.09.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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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교구 사무국에서 유지재단 업무와 함께 중앙교구 봉공회도 함께 담당했다. 봉공회의 주요 행사 가운데 하나인 보은장터는 처음에 원광대학교 문화체육관 앞에서 했는데 여러 가지 여건이 안좋았다. 장소가 협소한데다 각종 주차 문제 등으로 학교측에서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이...
교화자의 삶
권덕천 덕무
2016.09.2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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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원불교를 만나게 된 건 초등학생 시절이었다.그 당시 여름이었는데 동네에 있었던 교당에서 마침 여름학교를 운영했다. 그 때 나는 친한 친구 따라서 여름학교에 함께 갔다. 3박4일 동안 다른 여러 친구들과 정말 재미있게 지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정식으로 교당...
교화자의 삶
권덕천 덕무
2016.09.0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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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 말씀하시기를 "큰 도에 발원한 사람은 짧은 시일에 속히 이루기를 바라지 말라. 잦은 걸음으로는 먼 길을 걷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으로는 큰 도를 이루기 어렵나니, 저 큰 나무도 작은 싹이 썩지 않고 여러 해 큰 결과요, 불보살도 처음 발원을 퇴전(退轉)...
교화자의 삶
최대규 원무
2016.09.02 1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