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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8(1923) 음력 6월 말, 소태산 대종사는 봉래정사에서 서중안 부부의 간청을 받고 새 회상을 열기로 했다. 그러다 모친(유정천(劉定天))의 환우 소식에 영광 연성리 아우 동국(東局)의 집으로 가서 모친을 간호하며 “인간의 생사는 다 천명(天命)이 있는 것이오니, 안심하시고 항상 일심 청정의 진경(眞境)에 주하십시오”라고 위로하고 봉래정사로 돌아왔다. 얼마 후 모친이 열반하자 소태산 대종사는 각지의 제자들과 치상(治喪)을 마치고 제자들과 영산으로 와서 옥녀봉 아래 도실(道室)에 모였다. 그러나 갑자기 많은 제자가 모이자 도실은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2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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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올해로 원불교 제3대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시작될 제4대를 앞두고 전 교단적으로 특별기도(이하 특별기도)가 진행된다. 이번 특별기도는 전국 각 교당과 기관에서 12월의 마지막 주인 25~31일에 동시 봉행될 예정이다. 중앙총부에서는 12월 26~28일 3대 마감 참회기도, 원기109년(2024) 1월 2~4일 4대 발원 특별기도를 진행한다.교단 제3대의 마무리와 제4대의 시작을 앞두고 출가교역자 총단회와 중앙교의회 의장단회의 등을 통해 재가출가 교도들은 전 교단적으로 힘과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기도가 필
교화
이현천 기자
2023.12.2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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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주세불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으로 따랐던 친견제자 법산 이백철 원정사(法山 李百徹 圓正師)가 12월 13일 열반했다.원기24년(1939) 13살에 학업을 위해 총부로 찾아온 소년은 소태산 대종사를 친견하고 직접 숙소에 불을 때며 시봉을 했다. 당시 소태산 대종사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훌륭한 사람이 돼라”고 당부했고, 소년은 그 손짓과 말 한마디를 평생 모시고 살았다.소태산 대종사는 “나중에는 날 본 눈이라도 보고 싶어 할 것이다”고 했다. 법산 원정사의 ‘소태산 대종사를 본 눈’은 이제 감겼지만, 그
열반
이현천 기자
2023.12.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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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변산에 자리를 잡은 뒤 제자들의 방문이 많아졌다. 원기6년(1921)에는 백학명 선사의 주선으로 실상사 소유 땅에 초당을 짓고 ‘석두암’이라 이름 붙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석두암이 지어진 뒤 남녀 제자를 실상초당과 석두암에 나눠 지내게 하고, 초안한 교강과 교서로 제자들을 훈련시켰다. 원기8년(1923)에는 김제에 사는 서중안이 찾아와 감복해 부자지의를 맺고, 하산을 간청했다. 이를 소태산 대종사가 허락하면서 새 회상 창립 준비가 시작됐다.[2023년 12월 20일자]
100년 100장면
자료제공=전북교구
2023.12.2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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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내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이 한 문장만 보면 대부분은 ‘그래, 연말에 당연히 나올법한 이야기이지’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9월 중순, 한 해의 1분기 이상 남은 시점에서 나온 것이라면 어떨까. 원불교신문사의 ‘내년’은 4개월 전 시작됐다. 그리고 차곡차곡 준비됐다. 10회. 내년을 준비하는 편집회의의 횟수다. 여기에는 그야말로 건물 안에서 ‘회의만’ 하느라 주변을 즐기지 못했던 일정도 있고, 전무출신 훈련을 받는 교무들을 위해 식구들이 훈련원에 들어와 회의한 일정도 포함이다.다음해를 준비
기자의시각
장지해 기자
2023.12.2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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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 76상(원형 성곽 상): 만리장성이 외침(外侵)에 취약한 이유는?인류의 문화유산 중 최고봉을 꼽을 때‘달에서도 관측된다’는 만리장성을 꼽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리장성은 서쪽 자위관으로부터 동쪽 호산장성에 이르기까지 전장은 8,851.8㎞이며, 이중 인공성벽의 길이는 6,259.6㎞이고, 성벽의 평균 높이는 6~7m, 폭은 4~5m에 이르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도 손꼽힌다. 진시황은 북의 흉노를 몰아내고 하투를 점령하며 임조에서 요동에 이르는 만여 리의 장성을 수축했고, 수문제는 돌궐을 방어하기 위해 장
일원 108상
윤덕균
2023.12.2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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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남덕 교무] 춘천교당에 와서 2년째 어린이법회와 어린이·학생 훈련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나’에게 마음을 연 어린이와 학생들은 그동안 겪었던 일이나 자기가 잘하는 일, 자기의 마음을 잘 표현한다는 것이다. “교무님! 저 이거 샀어요!”, “교무님, 저는요~ 저번 주에 어디 다녀왔어요!”, “교무님 저 이거 하고 싶어요~” 등 하고 싶은 것이나 각자의 자랑할 거리나, 갖고 싶은 것들을 주제로 내게 말을 한다.처음에는 아이들이 그렇게 말해주는 게 어색했다. 하지만 자주 듣다 보니, 누구에게나 ‘나 자신’을 표현하고
똑똑!청소년교화
김남덕 교무
2023.12.2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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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상안 교도] 원불교 대구경북교구의 궁구미 교리학교가 벌써 3번째 수료식을 맞았다. 3년 전부터 가을이면 교구에서 9주간의 교리학교를 열어, 다양한 교무님들의 맛깔스런 교리해석으로 가슴 두근거리는 기다림을 안겨줬다. 올해도 강의 방식을 대면․비대면(유튜브 스트리밍)으로 진행해 개인적 사정으로 교육장에 참석하지 못하는 수강생들의 편익을 제공해줬고, 나아가 종강 후에도 수강생들이 반복해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개교 첫 해에는 ‘일원상 장’을 중심으로, 2회 때는 ‘정기훈련과 상시훈련법’, 그리고 올해는 ‘원불
은생수
장상안 교도
2023.12.2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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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이곳에서는 ‘남자학교는 칙칙할 것’이라는 생각이 보기 좋게 빗나간다. 깨끗하고 예쁘게 꾸며진 교정과 복도를 걸어가니 학생들이 달려와 “교무님, 안녕하세요!” 하며 씩씩하게 인사를 한다. 호칭도 제대로 알고, 스스럼없이 인사하는 모습은 전해 들은 대로 ‘원광중 아이들은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한다.소태산 대종사의 경륜을 따라 중앙총부 공회당에 심어진 ‘유일학림’이라는 씨앗. 그 씨앗은 어느새 7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원광중학교’라는 이름으로 지역사회 교육의 거목으로 자랐다. 교육의 시작은 공간부터박소현 원광
교립학교 탐방
이현천 기자
2023.12.1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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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변산 실상초당에서 제자들과 생활을 시작하자 찾아오는 이는 갈수록 많아졌다. 원기6년(1921), 월명암 백학명 선사의 주선으로 실상사 소유의 터 위에 송적벽이 터를 다졌고, 김남천이 목수 일을 맡아 초당을 짓고 ‘석두암(石頭庵)’이라 이름 붙였다. 석두암이 완공되자 실상초당은 여자 제자들이, 석두암 윗방은 소태산 대종사가, 아랫방은 남자 제자들이 사용했다. 제자들은 소태산 대종사가 석두암에서 초안한 교강과 교서로 훈련하면서 정법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졌다. 원기8년(1923) 초여름, 김제(金堤)에 사는 서중안(徐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1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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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에 입산한 소태산 대종사는 월명암에 머물다 실상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 영광·김제·전주 등지의 신자들이 찾아왔고, 소태산 대종사는 그들에게 관심입정과 견성성불 하는 방법의 법문을 설했다. 원기5년(1920) 소태산 대종사는 새 회상 기본 교리교강인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을 발표했고, 과 을 초안했다. 두 교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초기교서로 사용됐다. [2023년 12월 13일자]
100년 100장면
자료제공=전북교구
2023.12.1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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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해바라기 마을 방송입니다. 1. 주민 여러분, 완전히 겨울입니다. 보건소에서 주민들의 건강검진을 위해 12월 11일에 우리 마을을 방문하니, 마을회관에 방문해 건강검진 받으시길 바랍니다.2. 제7차 열린인문학 교양강좌가 12월 21일 오후 4시에 산서면사무소 2층 대강당에서 열립니다. 장하열 이장이 ‘사람은 무엇을 결산하며 사는가?’를 주제로 진행합니다. 3. 진전마을 결산총회를 12월 29일 개최합니다. 모두 오셔서 결산총회에 임해주시고, 마을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함께 추대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나는 53년 세월 동안 원불
우리 교무님은 이장님
장연광 원로교무
2023.12.1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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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김도아 기자] 원불교 제4대의 문을 열 새 전무출신들이 탄생했다. 12월 8일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거행된 출가서원식에서 20명(교화직 16명, 기간제 2명, 전문직 1명, 봉공직 1명)의 전무출신들은 본격 교화 현장으로 나서기 전 거룩한 서원을 되새겼다.전산종법사로부터 법락과 를 받은 새 전무출신들은 법신불 사은전에 “세세생생 이 법륜을 따르고, 교단의 명에는 수화를 불피하고 개인의 명예와 권리와 유혹을 일체 포기하고 오직 이 회상을 위해 정진하겠다”는 서원문을 올렸다.또 이날 출가서원자를 대표
교화
이현천·김도아 기자
2023.12.1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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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원불교의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 될 원기109년, 교단 제4대의 시작을 앞두고 전산종법사의 신년법문이 공개됐다. ‘우리 모두 개벽 성자로 삽시다’라는 제목의 원기109년 신년법문은 일상 수행의 요법에 바탕해 일상생활 속에서의 실천과, 이를 통해 각자가 ‘개벽 성자’되기를 당부한다.전산종법사는 원기109년 신년법문에서 먼저 “교단 제4대는 세계에 일원의 복과가 맺어지는 결복 교운의 시대”라며 “지금까지의 제도사업 실적을 기반으로, 모든 시선을 세계로 돌려 결복 교운을 힘차게 개척해나가야 한다”고
교화
장지해 기자
2023.12.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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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성근 교무] 소태산 대종사는 원불교 개교의 동기에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을 밝히고 있다.며칠 전 나는 재미있는 반려AI를 알게 됐다. 인터넷에서 ‘하나님 AI’를 검색하면 크리스천 앱 ‘초원in’이 연결된다.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앱에 접속해 실지 질문을 해보고 이 앱에 대한 기사가 있는지 검색도 했다. 기사 중에는 ‘2030, MZ세대들이 많이 접근을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앱에는 많은
논설위원 칼럼
김성근 교무
2023.12.1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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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세훈 교무] ‘이단치교’란 10인1단의 교화단을 조직해 교단의 통치와 교도들의 교화·훈련을 능률적으로 수행하려는 방법을 말한다. 이는 원기2년(1917) 7월, 소태산 대종사가 구인제자들로 교화단을 조직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이단치교의 경륜은 교단법으로 법제화됐다. 제12조(교화단)에는 “본교는 십인일단의 교화단을 조직하여 교화와 통치의 원활을 기한다”고 정의돼 있고, 출가교화단규정 제2조(목적)에는 “출가교화단은 본교 출가교도를 이단치교의 이념 아래 조직적으로 관리하여 공부 사업의 촉진과 대중교화로
법규궁리
박세훈 교무
2023.12.1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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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황성학 교무]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일찍이 ‘사오십년 결실이요, 사오백년 결복’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원불교 교단은 이제 3대를 마무리하고 4대를 맞이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이 순간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교단적으로 어떤 꿈을 꿔야 한다. 나는 ‘K-종교 원불교’를 꿈꿔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 속에 처해있던 원기13년(1928)에 “우리에게 큰 보물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금강산이다. 이 나라는 반드시 금강산으로 인하여 크게 드러날 것이요, 이 나라와 금강산과 그 주인
설교
황성학 교구장
2023.12.1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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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영산’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원불교를 만나고 ‘자부심’이 됐다. 영광군 백수읍, 소태산 대종사가 태어나 대각한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한 소년은 고등학교 때 처음 ‘자부심’을 배웠다. “고등학교 때 상담실에서 원불교 교무님을 처음 봤어요. 당시 노래도 잘하고 기품있던 교무님을 보니 동경이 생기더라고요.” 김영근 목동교당 교도회장은 당시 해룡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김정심 교무에게서 꿈과 서원을 배웠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뭐든 배우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 하지만 그에 비해 가정형편은 녹록지 않았다.
감사생활 캠페인
김도아 기자
2023.12.1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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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변산에 관심을 둔 것은 원기4년(1919) 방조제 공사를 마칠 무렵이다. 이때 소태산 대종사는 영광경찰서에 연행됐다가 1주일 후 풀려났다. 방언공사와 법인성사를 이룬 후 소태산 대종사는 정산종사를 월명암으로 보냈고, 스스로는 김제 금산사를 거쳐 12월 13일 변산 월명암에 당도했다. 그곳에서 백학명 선사와 불교 혁신 사상을 토의하며 각별한 교의를 맺었다. [2023년 12월 6일자]
100년 100장면
자료제공=전북교구
2023.12.1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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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월명암에 머물자, 전주와 김제 등지에서 송적벽(宋赤壁), 김남천(金南天) 등이 찾아와 모시기를 원했다. 원기4년(1919) 음력 12월, 소태산 대종사가 월명암에서 산 아래인 실상사 옆 실상초당으로 거처를 옮기자 김남천과 송적벽이 시봉(侍奉)을 하고, 김남천은 홀로 된 딸 김혜월(金慧月)과 외손녀 이청풍(李淸風)을 초당으로 오도록 해 식사 수발 등의 시봉을 담당하게 했다. 이때 영광·김제·전주 등지의 신자들이 서로 소식을 통해 찾아오자 소태산 대종사는 그들에게 관심입정(觀心入定)과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방법의 법문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11 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