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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변산 실상초당에서 제자들과 생활을 시작하자 찾아오는 이는 갈수록 많아졌다. 원기6년(1921), 월명암 백학명 선사의 주선으로 실상사 소유의 터 위에 송적벽이 터를 다졌고, 김남천이 목수 일을 맡아 초당을 짓고 ‘석두암(石頭庵)’이라 이름 붙였다. 석두암이 완공되자 실상초당은 여자 제자들이, 석두암 윗방은 소태산 대종사가, 아랫방은 남자 제자들이 사용했다. 제자들은 소태산 대종사가 석두암에서 초안한 교강과 교서로 훈련하면서 정법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졌다. 원기8년(1923) 초여름, 김제(金堤)에 사는 서중안(徐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1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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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월명암에 머물자, 전주와 김제 등지에서 송적벽(宋赤壁), 김남천(金南天) 등이 찾아와 모시기를 원했다. 원기4년(1919) 음력 12월, 소태산 대종사가 월명암에서 산 아래인 실상사 옆 실상초당으로 거처를 옮기자 김남천과 송적벽이 시봉(侍奉)을 하고, 김남천은 홀로 된 딸 김혜월(金慧月)과 외손녀 이청풍(李淸風)을 초당으로 오도록 해 식사 수발 등의 시봉을 담당하게 했다. 이때 영광·김제·전주 등지의 신자들이 서로 소식을 통해 찾아오자 소태산 대종사는 그들에게 관심입정(觀心入定)과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방법의 법문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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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처음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邊山)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영산에서 간석지 방조제 공사가 준공될 무렵인 원기4년(1919)이었다. 이 무렵, 소태산 대종사는 영광경찰서에 연행됐다가 1주일 만에 풀려났다. 방언공사 마무리를 앞두고 소태산 대종사는 수양처를 찾아 윗녘인 변산에 있는 월명암(月明庵)으로 갔다. 월명암에는 영광 사람인 백학명(白鶴鳴) 선사가 주지로 있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방언공사를 마무리하고 법인기도를 시작해 8월 21일(음력 7월 26일) 법인성사를 이룬 후 정산종사를 월명암으로 보내며 “회상 창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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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2023.12.0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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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이하 종지협)가 11월 20일 문경 봉암사에서 이웃종교 성지순례를 통해 현대사회 종교 가치와 수행정신을 되새겼다.이날 성지순례행사에는 나상호 원불교 교정원장을 비롯해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정서영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최종수 유교 성균관장,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장, 김령하 한국민족종교협의회장 등 7대 종단대표자와 운영위원들이 참가했다.참석한 종교지도자들은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조계종립 특별선원에서, 불교를 이해하는 소통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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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원 기자
2023.11.2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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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원기4년(1919) 법인성사 후, 정산종사를 전라북도 변산 월명암 백학명 선사 문하(門下)로 보내고 김광선(金光旋)을 대동해 휴양 차 김제 모악산 금산사(金山寺)를 찾았다. 소태산 대종사와 김광선은 미륵전 뒤 송대 산 쪽의 방을 거처로 정하고 휴양하면서 짚신을 삼아 금산사 아래 원평 시장에 내다 팔며 생활했다. 어느 날 소태산 대종사는 머물던 송대 방 출입구 문미(門楣, 창문 위에 가로 댄 나무. 여기에서는 문 위를 의미함)에 ‘○(일원상)’을 그렸다. 이는 자신이 깨달은 우주 만유의 본원을 ‘○’으로 처음 그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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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2023.11.2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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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청소년들이 함께 통일과 평화의 씨앗을 심고 길렀다. 11월 10~11일 열린 ‘2023 남북 어울림 프로그램’에서다. 한겨레중학교(교장 이진희)가 진행한 이 행사에는 안성시 내 4개 학교(가온고등학교·공도중학교·서운중학교·안성중학교) 100여 명의 교육가족(교직원·학생)들이 함께했다.이번 행사에서 남북 청소년들은 ‘어울림’의 의미를 새기며 서로를 알아가는 ‘나 알리기’, ‘어울림오징어게임’ 등으로 친목을 도모했다. 또 통일과 평화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도전! 통일 골든벨’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5개 학교 학생이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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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천 기자
2023.11.2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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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4년(1919) 봄, 영산에서 방언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독립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를 “개벽(開闢)을 재촉하는 상두(喪-) 소리다”라며 “어서 방언 마치고 기도 올리자”고 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9인 단원들과 4월 26일(음 3월 26일) 산상기도를 시작하며 단원들에게 ‘각자의 마음에 천의(天意)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으며, 몸에 창생을 구원할 책임이 있음’을 깨닫도록 지도했다. 기도 장소는 교화단을 조직할 때 정한 단원의 각각 방위를 따라 정하되, 노루봉(중앙봉)을 중앙으로 잡고 8방을 맞췄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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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2023.11.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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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송규 종사는 원기2년(1917) 스승을 찾아 경상북도 성주에서 전라도로 넘어와 구도하던 중 김제 모악산 대원사에서 정읍 화해에 사는 김해운(金海運)을 만났다. 정산종사는 김해운의 청에 의해 그의 집으로 와서 기도와 주송(呪誦)으로 적공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첫 교화단(敎化團)을 조직하며 중앙위(中央位)를 비워 두고 간혹 밤하늘 별들의 운행을 살폈다. 원기3년(1918) 영광에서 방언공사(防堰工事)를 시작한 직후 어느 날, 소태산 대종사는 김광선(성섭)과 김해운의 집을 방문해 스승을 만나고자 기다리며 머물던 정산종사를 만나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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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2023.11.0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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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후(1916) 교단 건설에 착수해 그해 12월에 표준제자를 내정하고, 원기2년(1917) 저축조합을 결성한 다음, 원기3년(1918) 4월(음)에 길룡리 간석지 방언공사에 착수했다. 이에 관련한 모임 장소로 범현동의 이씨제각과 강변주점 등을 이용하는 등 불편이 있었다. 제도사업을 향한 공부의 필요성이 더해지면서 그해 10월(음) 소태산 대종사 탄생가 옆 옥녀봉 아래 건축을 착수해 골바람과 눈보라를 무릅쓰고 12월에 완공했다. 상량문을 ‘사원기일월 직춘추법려 송수만목여춘립 계합천봉세우명(梭圓機日月 織春秋法呂 松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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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2023.10.3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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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2년(1917) 가을, 소태산 대종사는 회상 창립 준비로 제자들과 저축조합을 설립하고, 허례폐지·미신타파·금주단연·근검저축·공동출역 등의 새 생활 운동을 전개했다. 소태산 대종사가 먼저 가산을 처분해 출자하고, 조합원들이 동참해 저축금을 확보했다. 이때 숯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숯값이 폭락해 팔지 못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자 저축조합은 그들을 위해 숯을 매입했다. 그리고 이듬해 숯값이 폭등해 많은 이익을 보게 됐다.원기3년(1918) 봄, 소태산 대종사는 조합원들에게 ‘길룡리 해면(海面)의 간석지(干潟地)를 방언(防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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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2023.10.2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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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원기2년(1917)부터 깨달음의 심경과 그 지견으로 세계상을 내다보고 많은 가사(歌辭)와 한시(漢詩)를 읊었다. 당시 김성섭(金成燮)이 이를 기록하여 이라 하였다. 그 내용은 ‘도덕의 정맥(正脈)이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며, 세계의 대세가 역수(逆數)가 지나면 순수(順數)가 올 것’이라는 것과, 장차 회상 건설계획 등이었다. 원기5년(1920), 소태산 대종사는 변산 봉래정사(蓬萊精舍)에서 교리의 강령(綱領)을 발표한 후 은 ‘한 때의 발심(發心)에 도움은 될지언정 많은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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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2023.10.1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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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후, 가장 큰 변화는 병색(病色)이 사라져 얼굴에 광명(光明)이 어려 있는 것이었다. 또한 말과 행동이 범인으로는 측량하지 못할 정도로 변모하여 보는 사람의 정신이 황홀하였다. 소태산 대종사가 생각하기를 ‘나의 아는 바는 곧 도덕의 정체(正體)이요, 나의 목적한 바는 곧 도덕을 이 세상에 창건하여 고해에 빠진 일체중생을 낙원으로 인도하자는 바가 아닌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도문(道門)을 열 만한 기초가 갖춰져 있지 못하여 방편치성(方便致誠)으로 따르는 40여 명을 얻었다. 그들 중 진실하고 신념이 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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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2023.10.0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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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1916년 깨달음을 얻은 후 밖으로 시국(時局)을 살펴보고, 도덕 부활의 시급함을 느끼어 ‘물질이 개벽(開闢)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고 제창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깨달음을 얻은 후 거처할 곳이 적당하지 않았다. 범현동(帆懸洞)에 사는 김성섭(법명 광선(光旋))은 자신의 집 옆에 있는 전주 이씨들의 선산과 제각을 관리하였었다. 그리하여 소태산 대종사가 이씨제각(李氏祭閣)에 머물도록 하였다.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문이 나자 근방의 사람들이 이씨제각으로 모여들었다. 모여든 사람들에게 시국에 대한 감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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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2023.09.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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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본격 대면으로 진행된 청소년 여름훈련이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 됐다는 평가가 이뤄졌다. 이는 지난 3년간 비대면 시대를 지나며 쌓은 현장의 연합활동 노하우와 리뉴얼된 교재 보급, 예비교무들의 훈련실습이 병행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9월 14~15일 원불교 중앙총부 법은관에서 교구 청소년교화협의회 담당교무 연수(이하 청담교무 연수)가 열렸다. 연수에서 청담교무들은 교구별 여름훈련 상황을 공유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내년 훈련을 준비하기도 했다.이에 윤대기 청소년국장은 “훈련이 단발성에 그치면 안되고
온라인뉴스
이현천 기자
2023.09.1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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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1916년 깨달음(大覺)을 얻은 후, 자신의 깨달음이 자력으로 구하는 중 사은(四恩)의 도움이었음을 알았다. 이어서 ‘동서양의 종교와 신흥종교 교리의 강령을 참고하여 깨친 바와 대조하여 보기 위하여 유서인 과 사서(四書)(···), 동학의 ·, 선서(仙書)인 ·, 기독교의 도 구해 열람한 뒤 “나의 아는 바는 옛 어른들이 먼저 간파하였구나!”라고 탄식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어느 날 꿈속에서 이라는 경을 보고 영광 불갑사에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09.1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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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총장 박성태)는 2023학년도 2학기부터 ‘전북, 도시와 사람’을 정규교과로 개설한다.저출산과 고령화,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전라북도는 시도별 소멸위험 시군구 비중에서 92.9%로 전국에서 가장 높아 인구감소 위기를 넘어 인구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지역소멸 문제의 원인은 현재 지역사회와 지역대학의 동반 침체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지역사회와 지역대학의 협력 및 상호 발전을 위한 플랫폼 구축을 통해 지역소멸 문제 해결과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강좌와 관련
온라인뉴스
이여원 기자
2023.09.0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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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병진·丙辰) 4월 28일(음 3.26.) 새벽, 소태산 대종사가 노루목 어두운 방 안에 앉아 있다가 정신이 문득 쇄락(灑落)해져 전에 없었던 새로운 기분으로 이상한 영기(靈氣)의 움직임을 느꼈다. 하늘은 청명하고 별이 반짝이는 가운데 맑은 공기를 호흡하니 전에 없던 생각이 차례로 떠올랐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난 뒤였다. 이웃 마을에 사는 사람 몇이 이웃인 구수미 장에 가다 잠시 집 옆 노루목고개 바위에 앉아 과 의 글귀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함을 들었다. 신기하게 그 글귀가 환히 해석되었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09.0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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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채무이행을 하고 난 뒤 22세 무렵 우두커니(入定) 있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23세 되던 여름 장마로 인하여 귀영바위 집이 무너져 노루목에 빈집이 있어 이사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노루목으로 이사하고 고창 연화봉으로 수양을 다녀왔다. 그 후부터는 장소 구분 없이 입정에 든 시간이 늘어가던 어느 날 아침, 정신이 맑아지자 법성포 장에 가기 위해 장꾼들과 동행하여 선진포 나루로 갔다. 장꾼들은 배로 법성포 장에 가고 소태산 대종사는 한쪽에서 배를 기다리며 서 있다가 입정에 들었다. 장꾼들이 장을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08.2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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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영광(靈光) 영산(靈山) 노루목에서 수양하던 스물네 살(1914) 때였다. 구도의 열의는 불타올랐으나, 어찌할 방향을 몰라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찬방에서 변변한 이불도 없이 홀로 앉아 ‘이 일을 어찌할꼬?’ 하는 걱정만 하고 있었다.이때 이웃 돛드레미[범현동(帆懸洞)]에 사는 김성섭[법명 광선(光旋)]이 딱한 처지를 보고 고창군 심원면 연화봉 중턱에 있는 친지 김준상(金駿相)의 오두막 초당을 소개하여 수양하도록 하였다. 초당에서 한겨울임에도 얼음물에 목욕하고 찬 방에 밤을 새우며 수행 정진하였다. 입정(入定) 삼매(
온라인뉴스
이현천 기자
2023.08.2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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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송규 종사는 9세경에 을 배운 후, 11세 무렵 를 공부하다가 ‘천하 창생을 널리 구제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건설하리라.’라고 생각하였다. 이때부터 정산종사는 마음속에 큰 스승 만나기를 염원하였다. 소야마을로 이사한 정산종사는 13세 되던 해 봄, 여청운(呂淸雲, 중타원)과 결혼하였으나 구도에 대한 정열만 더욱 뜨거워갔다. 다시 박실마을로 이사하여 집 뒤뜰에 있는 거북 모양의 바위 앞에서 ‘천하 창생을 제도하는 큰 사업’을 이루고자 천지신명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거북바위에서 상당 기간 기도를 계속한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08.13 1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