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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이 몸 안에는 따로 주인인 내가 없다. 마찬가지로 일체 우주 만물도 각각의 주인이 없다. 모든 체인점에는 주인이 없다. 밤낮도 없이 일 년 365일, 주인이 없는데도 아무 탈 없이, 매 순간 완벽하게 운영된다. 본점 주인인 진리가, 이 심신을 비롯해 우주 만물이라는 체인점을 일시에 직접 운영한다. 우주 만물 모든 것은 본점인 진리의 소유다. 진리가 모든 우주 만물의 경영자다. 모두가 진리의 것이며, 역으로, 그 진리는 모두의 것이다. 하나의 진리를 우주 만물이 공유한다. 따로 저 위에 있는 진리를 가져다
참 쉬운 깨달음
장오성 교무
2024.01.2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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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준원 소장] 우주라는 말은 중국 전한시대 에서 유래된다. “천지사방을 ‘우’, 고금왕래를 ‘주’라고 한다(天地四方謂之宇 古今往來謂之宙).” 정신은 시간, 육신은 공간에 존재한다.현대 물리학에서 우주는 시간의 주기와 공간의 거리, 느린 동작과 빠른 이동으로 팽창하고 수축한다고 한다. 암흑 에너지와 진공 에너지가 존재하는 ‘텅 빈 충만(Empty Fullness)’ 상태의 우주다. 있는 듯 없는 듯 약존약무(若存若無)다. 소태산은 무위이화(無爲而化) 자동적으로 생성하고 소멸하는 우주라고 했다.눈에 보이면
평형수
이준원 소장
2024.01.2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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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원기로는 9년, 꼭 100년 전이다. 게다가 60간지의 첫해인 갑자년. 그해 세상에 ‘본격 등장’한 한 종교단체가 있다. 바로 원불교(당시 회명(會名) 불법연구회)다. 여기서 ‘본격 등장’이라는 말을 쓴 이유가 있다. 1924년 그해에 원불교가 내디딘 역사의 남다른 의미 때문이다. 그 내딛음에는 이전까지의 역사와는 차원이 다른 결연함 같은 게 들었다. ‘세상 속으로’ 그리고 ‘세상과 함께’. ‘그해 소태산’은 세상 속으로 한발을 크게 들이는 동시에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교화’를 본격화 했다. 실제로 ‘그해
이달의 기획
대표 집필=장지해 편집국장
2024.01.1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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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신이랑 무당이 제일 바쁜 시즌 중 하나가 새해다. 온갖 소망, 바람, 다짐, 계획을 세우고 꼭 이루게 해달라고 신에게 딜을 하거나 강한 부담을 준다. 이쪽에서도 이기게 해 달라, 저쪽에서도 이기게 해 달라, 양쪽 다 간절히 기도해대니 신이 퍽 난감하겠다. 누가 더 간절히 하는가, 누가 더 많이 냈는가, 누가 더 노력하는가를 보는 것일까. 결과를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니,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행운판 빙 돌려, 복불복으로 정하시려나.점이나 사주를 봐서 쉽게 결과를 알아보려는 어리석음에 비하면,
참 쉬운 깨달음
장오성 교무
2024.01.1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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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9년(1924) 음력 4월, 전주 전음광의 집에서 서중안·송만경·이청춘·이춘풍·문정규·박원석·전음광 7인이 불법연구회 창립발기인이 되어 창립 준비와 총부(본관) 기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들은 회상의 총부 기지 터로 토지가 광활하고 교통이 편리해 무산자(無産者)들의 생활과 각처 회원들의 내왕에 편리한 이리(익산) 부근으로 정하기로 했다. 터전을 정한 후 6월 1일(음력 4월 29일), 이리 죽산 보광사에서 창립총회가 개최됐다. 각 지역 대표들과 다수의 신도가 참석한 가운데 ‘불법(佛法)에 정통하고 범사(凡事)에 모범이 될 만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4.01.1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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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또래보다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학교가 재미없었다. 혼자 생각으로 ‘학교에서 뭘 배울 수 있을까’ 늘 의문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13살 되던 해, 그는 “중학교를 마치면 서울로 상경하겠노라”고 부모님에게 말했다. 사실 일방적인 ‘통보’였을 터. 그렇게 그는 16살에 서울로 올라가 20대 초반까지 도시생활을 했다. 인연의 시작이었을까. 친구와 의기가 투합돼 농어민 후계자가 되고자, 그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일명 4-H 운동에 심취돼 새마을 청소년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좀 더 지식을 넓혀야겠
교무와의 대화
이여원 기자
2024.01.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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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치열한 정글 생태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은 마음 아프다.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성공이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신체적 위협, 게다가 다른 동물과 달리 심리적 고통까지 견뎌야 하는 인생 정글에서 살아남아, 또 한 해의 끝에 서 있다.인생이란, 힘든 일 한 번, 살 만한 일 한 번씩 지나가기를 반복하며, 자기만의 천을 짜는 과정이다. 누구에게나 씨실 역할의 힘든 일, 날실 역할의 좋은 일이, 한 번씩 교차해 일어난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하는 것이 지혜다. 씨실만 반복되거나 날실만
참 쉬운 깨달음
장오성 교무
2024.01.0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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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누군가 무엇을 설명할 때, ‘이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야!’라고 한다거나, ‘이건 있는 건데 없고, 없는 건데 있어!’ 하는 식으로 말하는 이가 있다면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볼 것이다. ‘뭔 소리야, 그래서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는 이분법에 익숙해 사는 중생들에게,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이 텅 빈 진리를 알기 쉽게 설하려 할 때 소태산 대종사의 고심이 얼마나 크셨을까. 그들을 진리에 도달케 해주려고 궁구해 낸, 또 하나의 정확한 표현이 유무초월
참 쉬운 깨달음
장오성 교무
2023.12.2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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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변산에 자리를 잡은 뒤 제자들의 방문이 많아졌다. 원기6년(1921)에는 백학명 선사의 주선으로 실상사 소유 땅에 초당을 짓고 ‘석두암’이라 이름 붙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석두암이 지어진 뒤 남녀 제자를 실상초당과 석두암에 나눠 지내게 하고, 초안한 교강과 교서로 제자들을 훈련시켰다. 원기8년(1923)에는 김제에 사는 서중안이 찾아와 감복해 부자지의를 맺고, 하산을 간청했다. 이를 소태산 대종사가 허락하면서 새 회상 창립 준비가 시작됐다.[2023년 12월 20일자]
100년 100장면
자료제공=전북교구
2023.12.2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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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온 삭신이 쑤시고 아프면 우리는 신음소리를 내며 힘들다고 말한다. 우리는 보통 몸의 통증이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믿고 사는데 그게 사실일까? 30년 전쯤, 도반들과 함께 처음으로 스키를 타던 날, 넘어지고 뒤집어지며 몸이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다들 행복해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려는데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 사방에서 곡소리가 난무했다. 그런데도 이 상황을 불행하다거나 고통으로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남들 아파하는 모습에 깔깔거리며 좋아한다. 이 통증은 신나는 체험으로 인
참 쉬운 깨달음
장오성 교무
2023.12.2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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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변산 실상초당에서 제자들과 생활을 시작하자 찾아오는 이는 갈수록 많아졌다. 원기6년(1921), 월명암 백학명 선사의 주선으로 실상사 소유의 터 위에 송적벽이 터를 다졌고, 김남천이 목수 일을 맡아 초당을 짓고 ‘석두암(石頭庵)’이라 이름 붙였다. 석두암이 완공되자 실상초당은 여자 제자들이, 석두암 윗방은 소태산 대종사가, 아랫방은 남자 제자들이 사용했다. 제자들은 소태산 대종사가 석두암에서 초안한 교강과 교서로 훈련하면서 정법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졌다. 원기8년(1923) 초여름, 김제(金堤)에 사는 서중안(徐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1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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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에 입산한 소태산 대종사는 월명암에 머물다 실상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 영광·김제·전주 등지의 신자들이 찾아왔고, 소태산 대종사는 그들에게 관심입정과 견성성불 하는 방법의 법문을 설했다. 원기5년(1920) 소태산 대종사는 새 회상 기본 교리교강인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을 발표했고, 과 을 초안했다. 두 교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초기교서로 사용됐다. [2023년 12월 13일자]
100년 100장면
자료제공=전북교구
2023.12.1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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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어떤 상황이나 사람의 언행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때 흔히 ‘아주 언어도단이야’ 하는 표현을 쓴다. 언어도단이란 원래, 이렇게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오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은 진리를 표현하려 할 때, 한없이 깊고 광대하고 형체도 없이 텅 비어 있으니, 어떤 말과 글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는 의미로 탄생했다. 형언할 수 없이 고귀한 용어가 어쩌다 평판이 좋지 않게 막 쓰이는 딱한 처지로 전락했는지 모르겠다.말과 글과 생각으로는 우리는 풀 한 포기조차 설명할 수도,
참 쉬운 깨달음
장오성 교무
2023.12.1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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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변산에 관심을 둔 것은 원기4년(1919) 방조제 공사를 마칠 무렵이다. 이때 소태산 대종사는 영광경찰서에 연행됐다가 1주일 후 풀려났다. 방언공사와 법인성사를 이룬 후 소태산 대종사는 정산종사를 월명암으로 보냈고, 스스로는 김제 금산사를 거쳐 12월 13일 변산 월명암에 당도했다. 그곳에서 백학명 선사와 불교 혁신 사상을 토의하며 각별한 교의를 맺었다. [2023년 12월 6일자]
100년 100장면
자료제공=전북교구
2023.12.1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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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월명암에 머물자, 전주와 김제 등지에서 송적벽(宋赤壁), 김남천(金南天) 등이 찾아와 모시기를 원했다. 원기4년(1919) 음력 12월, 소태산 대종사가 월명암에서 산 아래인 실상사 옆 실상초당으로 거처를 옮기자 김남천과 송적벽이 시봉(侍奉)을 하고, 김남천은 홀로 된 딸 김혜월(金慧月)과 외손녀 이청풍(李淸風)을 초당으로 오도록 해 식사 수발 등의 시봉을 담당하게 했다. 이때 영광·김제·전주 등지의 신자들이 서로 소식을 통해 찾아오자 소태산 대종사는 그들에게 관심입정(觀心入定)과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방법의 법문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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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한국인치고 옆에서 누군가 라면을 먹고 있을 때, 한 젓가락 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종류도 많고 맛도 좋아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한국 라면의 맛, 몸에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끊기란 쉽지 않다.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라면처럼,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또 다른 라면이 있다. 그건 바로 ‘~했더라면’으로 이어지는 ‘생각라면’이다.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그런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지금 성공해서 잘 살고 있을 텐데, 다른 사람을 선택했더라면, 그 땅을 샀더
참 쉬운 깨달음
장오성 교무
2023.12.08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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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가 처음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邊山)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영산에서 간석지 방조제 공사가 준공될 무렵인 원기4년(1919)이었다. 이 무렵, 소태산 대종사는 영광경찰서에 연행됐다가 1주일 만에 풀려났다. 방언공사 마무리를 앞두고 소태산 대종사는 수양처를 찾아 윗녘인 변산에 있는 월명암(月明庵)으로 갔다. 월명암에는 영광 사람인 백학명(白鶴鳴) 선사가 주지로 있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방언공사를 마무리하고 법인기도를 시작해 8월 21일(음력 7월 26일) 법인성사를 이룬 후 정산종사를 월명암으로 보내며 “회상 창립에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2.0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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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성사 이후 소태산 대종사는 정산종사를 변산 월명암 백학명 선사 문하에 보내고, 김광선과 함께 김제 금산사로 향했다. 짚신을 만들어 팔며 생활하던 중, 소태산 대종사는 자신이 머물던 금산사 송대의 문 위에 ‘○(일원상)’을 그렸다. 이 일원상은 금산사 송대 재건축 소식을 들은 이운권 교무가 수거했으나 한국전쟁 때 유실됐다. 일원상이 정식으로 불단에 봉안된 것은 원기20년(1935) 대각전 준공 때다.[2023년 11월 29일자]
100년 100장면
자료제공=전북교구
2023.11.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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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깨달음을 얻지 못해 영생을 죽네 사네 몸부림치는 세 가지가 있으니, 바로 생사, 시비, 소유에 대한 것이다. 아프거나 죽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 네가 문제라는 시비, 모든 걸 내가 더 차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삶을 힘들게 하는 주된 요소다. 이 세 가지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해법은 깨달음을 얻어 ‘생사 문제는 불생불멸, 시비는 불구부정, 소유의 박탈로 인한 것은 부증불감(不增不減)’임을 즉각 확인해 녹이는 것이다.부증불감은, 진리 자리에서는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없으
참 쉬운 깨달음
장오성 교무
2023.11.2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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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원기4년(1919) 법인성사 후, 정산종사를 전라북도 변산 월명암 백학명 선사 문하(門下)로 보내고 김광선(金光旋)을 대동해 휴양 차 김제 모악산 금산사(金山寺)를 찾았다. 소태산 대종사와 김광선은 미륵전 뒤 송대 산 쪽의 방을 거처로 정하고 휴양하면서 짚신을 삼아 금산사 아래 원평 시장에 내다 팔며 생활했다. 어느 날 소태산 대종사는 머물던 송대 방 출입구 문미(門楣, 창문 위에 가로 댄 나무. 여기에서는 문 위를 의미함)에 ‘○(일원상)’을 그렸다. 이는 자신이 깨달은 우주 만유의 본원을 ‘○’으로 처음 그려 보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11.27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