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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경전인 〈디가-니까야(Digha Nikaya, 장아함경)〉에는 부처님께서 '성지(聖地)의 중요함'을 다음과 같이 설법한다."아난다여,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네 가지 장소가 있다. 어떤 곳이 넷인가? 그곳은 여래가 ...
선진의법향
정성헌 기자
2017.10.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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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출신 평생 보람으로 여겨 근면하고 성실한 천품을 바탕으로 항상 최선을 다하는 면모를 보여준 봉산 이경봉(鳳山 李敬峰)정사가 9월29일 열반에 들었다. 봉산 정사는 원기61년 영산선원(현 영산선학대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이리교당·이리교구(현 중앙교구)·중앙훈련원(현 ...
교화
이여원 기자
2017.10.1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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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선학대 원광원 개축봉고22년 된 노후시설, 리모델링22년간 예비교무들의 생활관으로 쓰인 영산선학대학교 원광원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10일 개축 봉고식을 가졌다. 원광원은 여성 기숙사로, 남성 기숙사 정진원은 3년 전 개축한 바 있다. 영산선학대 대각전에서 열린 봉고식...
청소년
강법진 기자
2017.09.1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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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유연천리래상회(有緣千里來相會)라 했다. 일원회상과 아무 연고가 없었어도 평생 전무출신의 길을 걸어왔던 찬타원 이수진(74·贊陀圓 李守眞) 원로교무. 인연이 있으면 천리가 떨어져 있어도 만난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중이 되어야겠다김천이 고향...
선진의법향
정성헌 기자
2017.09.1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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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성 교무가 원기67년 범산 이공전 종사가 발행한 〈대종경 선외록〉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수정·보완하고 주석을 달았다. 이공전 종사가 편찬했던 대종경 선외의 법문집은 〈대종경〉 편수 당시 정산 송규 종법사가 "선택에서 제외된 자료들과 아직 수집 못한 자료들은...
이 한권의 책
최지현 기자
2017.09.0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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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반대한 출가, 사고 많았던 부교무 시절…시련과 역경 딛고 교화 사업 매진해한시도 잊지 못하는 대산종사…법문 사경과 좌선 적공으로 내생 서원 다져가고 있어"누가 알아주면 뭣하냐. 내 실력이 최고지. 자력이잖아. 우리는."위풍당당함이 풍기는 최인춘...
선진의법향
정성헌 기자
2017.07.2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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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예비교무는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와 영산선원을 이은 영산선학대학교(1985) 원불교학과에서 학부과정을 이수한다. 원기79년(1994) 석사과정을 도입한 이후 이들은 원불교대학원대학교와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육받는다. 이들 가운데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예비교역자...
교사이야기
양현수 교무
2017.07.0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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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May, our Youngsan University of Seon Studies family will be joined by six Won Buddhist members from the United States for our first International...
마음단상
송상진 교무
2017.05.0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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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법계와 하나인 자성불을 회복하고 나의 기도 이루어 주신다는 확신으로 선과 기도를 하라." 8일 저녁, 기자가 찾은 사단법인 우리선문화원(宇理禪文化院, 이하 선문화원)에서는 매월 진행되는 1박2일 정기훈련과 1천일 특별정진기도가 한창이었다."일상생활에서 각자의 사심(邪心)을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지 풀어내라"는 이여정 원장의 질문에 회원들의 진솔하고 훈훈한 공부담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단전주 활선의 천심(天心)이 번뇌와 피로까지 사라지게 한다.서울 도심 속 힐링치유도량삼각산 금선(金仙)의 정기가 서린 장군봉과 비봉자락에 자리한
마음이 답이다
안세명 기자
2017.04.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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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배우고 싶은 열정, 원불교 만남과 입교로 이어져"양도신 교무 열반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배움이 불연으로 이어지다집에 들면 노복 같고, 들에 나면 농부 같고, 산에 가면 목동 같이 진자리 마른자리 구별없이 살아온 인생. 모질었던 세간 풍파에...
선진의법향
정성헌 기자
2017.02.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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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은 순박했다. 미묘현통(微妙玄通)한 노자의 옛 사람까지야 재주가 없어 못 알아뵌다 하지만, 스승님 말씀따라 그저 살았던 것이 전부라는 욱타원 박영화(78·昱陀圓 朴永華) 원로교무의 주변없는 말솜씨는 참 순박했다. 인터뷰 내내 실수할까 봐 떨리는 목소리에도 그리운...
선진의법향
정성헌 기자
2017.01.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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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 불경죄로 광주형무소에 수감되어 1년간 옥고를 치루고 나온 구산 송벽조 교무는 일경의 감시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실무에 바로 복귀하지 못하고 고향 성주로 가서 지냈다.이에 작은 아들 송도성은 부친께 편지를 보낸다. 고향 성주와 가족이 있는 영광이 풍토가 같다며 영산으로 오셔서 가족과 함께 지내시길 청한다. 구산은 그후 삼례지부 지금의 수계농원 교무로 2년간 봉직하고 이어 금산지부 지금의 원평교당 교무로 4년을 근무한 후 연로하여 가족이 있는 익산 총부로 돌아왔다.해방 전해 그러니까 1944년 6월 죽마고우이자 동문인
교사이야기
송인걸 교무
2015.12.1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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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덕선 원무 영광이 고향인 나는 17세에 원불교와 인연이 닿아 전무출신을 서원했다. 하지만 그해 아버지를 여의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 셋째 오빠의 부름으로 이듬해 광주로 가게 됐다. 오빠는 나를 공부시키기 위해 데려갔지만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집집마다 시험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금남로에 있는 광주교당을 항상 지나쳐 갔다. 하루는 그곳
교화자의 삶
전덕선 원무
2015.12.1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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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계명시독은 소태산 대종사 당시에 실행하여 만든 자료이나 현재는 그 원본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성계명시독은 교단 최초의 복원유물로서 형타원 오종태 선진이 원청 20주년 행사 당시에 복원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 이유는 첫째로 형타원 오종태 선진의 유품 속에서 발견되었고...
교단유물
신성해 관장
2015.11.2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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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원기2세기의 새로운 100년이 시작된다. 대종사의 불법연구회 시대가 우리의 신앙과 수행의 원형질 시대라면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소태산의 숨결이 스민 그 시대는 오늘과 맞 닿아 더욱 생명력을 가지든지 아니면 점차 신화가 되어갈 것이다.원기2세기는, 지난 100년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 상상할 수 있겠다. 정산종사는 대종사의 부재를 대신할 정신적 역량을 갖추고 간악한 일제 말기부터 해방 공간의 혼란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교단을 수호했다. 무엇보다 소태산 대종사가 주세성자임을 천명하여 이후 모든 교도가 미래의 새
독자기고
나도국 원로교무
2015.07.0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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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공심과 근검절약 정신으로 원광대학 발전을 이끌어온 유공인 아산 김인룡(亞山 金仁龍)원정사가 21일 거연히 열반에 들었다. 아산 원정사는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와의 숙연으로 전무출신을 서원한 후, 원기34년 보화당 외무 첫 근무를 시작으로 삼창공사 외무, 익산보...
교화
이여원 기자
2015.06.2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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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김인룡 원정사님!숙겁의 불연이셨던가요? 김해운 할머니의 원력으로 대종사님과 정산종사께서 아산님 사가에서 만나서 새 회상 창립의 대화로 밤을 세우셨다지요? 아산님께서는 그 인연으로 백이와 숙제 형제를 연상하듯 3세 연하인 문산 김정용 아우와 출가를 하여, 유일학림 ...
교화
교단대표 김도종
2015.06.2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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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명호 원로교무 태어나던 해 원기24년 익산교당에서 이대교 교도의 연원으로 입교한 면타원 송명호(免陀圓 宋明鎬) 원로교무. 유년시절부터 평범한 삶이 아닌 좀 더 거룩한 삶을 살고자 염원했다. 전무출신을 목적하고 성장하는 듯 순한 성품으로 남에게 주기를 좋아했다. 청소년 시절에는 학생법회에 개근할 정도로 법회를 소중히 했고, 교우들에게도 늘 희생적이고 정
교화대불공
정리=이성심 기자
2015.06.0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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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로부터 전라도로 이사올 것을 권유받은 송벽조는 고향으로 돌아와 부친과 상의를 한다. 어릴적부터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손자(정산종사)의 장성하는 모습을 익히 지켜본 조부는 칠십이 넘은 고령에도 기꺼이 아들(송벽조)의 제의를 허락한다.사는 집이고 전답을 싼 가격에 처분한 송벽조는 먼저 영광으로 갔다. 음력 9월에 이사를 올것이니, 살 집과 전답을 구해 달라고 대종사 측근에게 부탁을 하고 성주로 돌아왔다. 음력 9월이 되어 가족을 솔거하고 전라도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도보로 걷기도 하면서 정든 고향을 떠나왔다.함께 나선 가
교사이야기
송인걸 교무
2015.05.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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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가 처음 영광 길룡리를 온 때는 방언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길룡리, 영산성지에 도착한 정산종사는 그 곳이 처음 같지 않았다. 낯선 곳이 아니었다. 산천이며 해변의 풍경이 익히 아는 곳이었다. 후일 정산종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내가 일찍 경상도에서 구도할 때에 간혹 눈을 감으면 원만하신 용모의 큰 스승님과 고요한 해변의 풍경이 눈 앞에 떠오르더니, 대종사를 영산에서 만나 뵈오니 그 때 떠오르던 그 어른이 대종사시요 그 강산이 영산이더라." 〈정산종사 법어〉 기연편 6장의 말씀이다.필자도 19살에 출가를 하여 영산선원에
교사이야기
송인걸 교무
2015.04.24 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