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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전 교단의 교화·교육·자선이란 3대 사업 목적에 의해 설립된 영산성지고. 어느덧 세월은 흘러 원기82년(1997) 대한민국 최초의 공인 특성화학교로 지정되어 교단의 다른 6개 대안학교 설립의 모태가 되고, 우리나라 교육계의 상징적 학교가 되었다. 이 영산성지고의 살림을 책임지는 학교법인 영산성지학원에 지난 2일 박청수 교무의 뒤를 이어 오원선 교수(강
미니인터뷰
우세관기자
2006.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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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선학대학교가 원기81년 12월 4년제 정규대학으로 승격됐다. 올해부터 전문성을 살려 영산선학대로 교명을 변경했지만 승격될 당시 교명은 ‘영산원불교대학교’ 였다. 영산선학대는 현재 원광대 원불교학과와 함께 교단의 전무출신 양성기관으로 오랜 역사적 전통에 뿌리하고 있다. 원기12년 ‘영산학원’으로 출발 원기49년 ‘영산선원’으로 이름을 바꿔 성직자를 양성해
교리에 바탕한 마음공부
정도연기자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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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중앙총부 법은관에서 열린 영산성지 공동체 실현을 위한 연구발표 및 공청회는 ‘장기적인 접근을 갖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과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교정원은 이날 수렴된 안을 검토해 9월 총단회에 보고한 후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신중론을 주장하는 측은 새 문명 발상 성지로 구상이 필요
교화
문향허기자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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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교단 인재양성의 보고였던 영산학원은 원기42년(1957) 영산재방언공사로 일시 휴원했다가 원기49년 교명을 ‘영산선원’으로 바꾸어 다시 문을 연다. 원기51년은 2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사진은 원기59년 10월 세계평화기원 및 영산선원 본관(원광원) 신축봉불식 모습. 현재는 퇴임한 원로교무를 위한 요양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교화
2005.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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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진회와 왕따문제 등으로 학원가가 얼룩진 가운데 이것이 더 이상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학교폭력의 근원이 가정에 있다며 어른들의 반성을 촉구하는가 하면, 비교육적 비합리적 체벌문화가 청소년들의 의식을 멍들게 하고 있어 교육계가 먼저 혁신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본사는 왕따와 학교폭력, 교사의
이달의 기획
남세진기자
2005.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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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선원은 지역 청소년들에게 교육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원기49년(1964)부터 중등반과 고등반(2년제)을 개설, 지역교육에 이바지했다. 이 노력은 원기59년 부설 영산고등공민학교로 발돋움했으며 오늘날 전국 대안학교의 효시가 된 영산성지고등학교로 자리하게 되었다. 사진은 원기60년대 영산고등공민학교 시절 수업모습.
교화
2005.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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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선학대학교가 3일 교명 변경을 진리 전에 고하는 봉고를 올렸다.전 교직원 및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이날 봉고식은 16명의 신·편입생 입학식 및 진급 결제식과 함께 이뤄졌다.영산선학대는 작년 영산원불교대에서 새롭게 교명을 변경, 교정원 원의회 의결과 교육인적자원부의 인가를 받아내 2005학년도 새 학기를 맞아 변경된 교명을 진리전에 봉고하고 대내외
교화
정도연기자
2005.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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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 안이정 종사가 2일 열반 4일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원불교교단장으로 발인식을 거행했다. 유해는 원불교 영모묘원 대원전에 안치했다.좌산종법사는 “신맥 법맥으로 교단 초창역사를 가꾸어온 산 증인이다”며 “평소 삶과 글로 남겨준 법문들은 교단 만대에 정신의 혼이 되었다”고 법문하고 ‘대도무도(?道無道)요 대덕무덕(?德無德)이며 대지무지(?智無智)나 광명
교화
정도연기자
2005.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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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명을 변경하게 된 가장 큰 이유와 배경을 듣고 싶습니다.‘영산선학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게 된 이유는 시대적 요청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기 위함입니다. 알다시피 세계적으로 선(禪)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입니다. 이것은 바로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 속에서 본래의 자아를 찾고 참다운 인간의 삶을 추구하려는 필연적 결과입니다. 본 대학에서는 선(禪)을 갈구
미니인터뷰
정도연기자
2004.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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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원불교대학교(총장 황영규)가 ‘영산선학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선원의 전통을 살려 특성화에 주력하기로 했다. 추진과정은 7월15일 원의회 상임위원회에서 교명 변경을 승인받고, 교육인적자원부에 변경을 신청하여 10월11일에 승인을 받았다. 교단은 원기40년 3대 선원(동산, 중앙, 영산)을 운영하여 교육인재양성을 해왔으며, 세 선원은 매년 수선을 통해
교화
정도연기자
2004.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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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원불교대학교 교명이 ‘영산선학대학교’로 변경됐다. 영산선학대학교 측은 교명 변경의 취지로 첫째, 정산종사의 영산선원 설립 경륜과 그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대산종사의 유시와 무시선 무처선의 대법을 실현하는 선도량 분위기 조성, 둘째 원기81년 원의회에서 적절한 여건이 되면 ‘선학대학’으로 개명한다는 단서, 셋째 대사회적 보편성 확보, 근원성지 분위기 유지
교화
문향허기자
2004.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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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선원에서 서쪽 400m 정도의 거리인 옥녀봉밑에 세운 원불교최초의 교당건축물로 그 이름을 구간도실 이라 하였다. 길룡리 옥녀봉 아래에 이 회상 최초의 교당을 건축할 때, 대종사 그 상량에 쓰시기를 “사원기일월 (梭圓機日月) 직춘추법려 (織春秋法呂)” 라 하시고 또 그 아래에 쓰시기를 “송수만목여춘립 (松收萬木餘春立) 계합천봉세우명 (溪合千峰細雨鳴)” 이
이 한권의 책
200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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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점의 큼직한 염주 알 하나하나에 유난히 대종사의 수택(手澤)이 역력한 이 단주는 인류구원의 새 회상을 열고 가신 새 부처님의 거룩한 숨결과 크신 경륜를 헤아리게 하는 유품 가운데 하나로 돋보인다. 대종사의 전 생애를 통하여 한결같이 오랜 세월을 무심한 듯 정겨운 도반과도 같이 함께 해온 명품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큰 깨달음의 환희로 금강경을 보시고 부
이 한권의 책
2003.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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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종사는 “정산종사께서 남북통일이 되기 전에 인재 만명을 길러놓아야 되니 인재를 길러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양신이 네가 천명만 길러라” 하셨다.영산선원 재직시에 대산종사께서 영산에 오셨을때 원광원(현 영산수도원) 언덕에 보리수 나무 세 그루를 손수 심으시면서 “천지인(?地人) 삼재(三才) 직수(植樹)라” 하시며 “이 보리수 세 나무에서 보리수 알이
학술
2003.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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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0. 6㎝. 표주박 안은 야자열매 특유의 하얀 바탕에 희고 섬세한 줄무늬가 이색적이다. 이 표주박은 대종사 겨울 철에 해수(咳嗽)로 기침을 하시며 ‘나는 길을 몰라서 온갖 절절한 구도 고행 끝에 도를 얻었으나 그대들은 대승 수행의 빠른 길을 알게 되었으니 이것이 큰 복이라’(대종경 수행품 47)고 말씀하신 간곡한 법문을 상기시킨다. 표주박은 청년 대
이 한권의 책
2003.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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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타원 윤주현(主陀圓 尹周琅) 원로교무는 수학시절 정산종사께 좌선이 잘 되지 않는다고 여쭈었다. "제가 일년이나 선을 했는데 마음이 오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라고 여쭈니 정산종사는 오분 정도의 정력이면 상당한 것이다. 일분은 일심이 되느냐? 일년 선을 해서 일분만 일심이 되어도 앞으로 선을 잘할 사람이다. 일분을 삼분, 오분, 십분으로 늘려가다 보면
학술
정도연기자
2003.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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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위시한 중국사상사를 보다 쉽게 공부할 수 있는 《유교·중국사상사전》이 출간되었다. 부산대 철학과 교수이자 부산진교당 교도회장인 김승환 교도(63, 속명 승동)가 1만9천6백여개의 항목을 직접 선정·집필하였다. 김 교도는 부산대 철학과 출신으로 영산선원에 몸담은 바 있으며 현재 부산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중국사상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 주조가 유
이 한권의 책
우세관기자
2003.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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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67년(1982), 남원교당에 계시는 어머님을 뵈러 갔다. 최덕신 교무의 소개로 무산 장성진 원로교무를 만나 중앙총부의 종두로서 아침저녁 범종과 심고 목탁을 치면서 출가의 첫 길이 시작되었다.중앙총부 종두늦잠을 자다 범종을 제시간에 치지 못해 아침공양 거르기를 밥먹듯 했다. 첫 봉급이라는 명목으로 용금 8천원을 주기에 하도 어이가 없어 책상서랍에 넣어
미니인터뷰
조원형 덕무
2003.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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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제복사에 근무하는 문정혜 교무는 여자교무들의 정복만을 일생동안 만들어 왔다.20년 바느질 외길 인생흰저고리 검정치마로 대변되는 여자교무들의 정복은 교단이 성장하기 전까지 원불교를 알리는 대표적인 홍보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도 일반인들은 여자교무들의 정복을 보고 ‘원불교’라는 인식을 하니 여자교무 정복의 위력은 대단한 셈이다.그 정복을 만들고 수선하
미니인터뷰
우세관기자
2003.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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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종로구 화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花?)145-2번지. 서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기가 맑다. 가을비가 내려서 그런지 더욱 상큼하다. 만타원 김명환(滿陀圓 金明換) 종사와 수산 이철원(修山 李徹遠) 대호법이 이곳에서 수양중인 집이다. ‘화동침구 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구나.’ 생각하며 부부를 만났다. 반갑게 맞이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처음 뵙는
미니인터뷰
문향허기자
2002.10.1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