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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열아홉 살 될 무렵, 이제 산신도 도사도 아닌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으나 부친이 열반하여 독공 계획이 무위로 돌아갔다. 부친이 열반하자 지금까지의 생활에 대한 의뢰와 구도에 대한 후원을 잃게 되었고, 모친과 처자의 생활 책임을 전담하여야 하고 부친이 생전에 영광 읍내 부자에게 빚을 진 채무독촉을 받았다. 그리하여 농사일로 동네 사람들과 의논도 하고, 집안일로 여러 곳에 출입하기 시작했으나 뜻과 같이 되지 않았다. 소태산 대종사는 귀영바위 옆에 오두막을 얻고 주막을 차려 운영하였으나 장사는 아예 이원화(
온라인뉴스
이현천 기자
2023.08.0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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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11세 되던 시월 보름날, 영광군 군서면 마읍리 선산 종중(宗中) 시향제(時享祭)에 부친을 따라 참석하였다. 이때 산신에게 먼저 제사를 올리고 난 다음 선조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가장 학식이 많다는 분에게 물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문답을 통해 산신을 만나면 자신의 평소 의문을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산신령을 만나기 위해 집에서 3km여 떨어진 삼밭재 마당바위를 기도 장소로 정하였다. 나름대로 제물을 장만하여 기도를 올렸다. 기도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이 소태산 대종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07.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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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소태산 대종사는 열반 몇 해 전부터 미래 세상에 대한 말씀과 열반에 대한 암시를 종종 했다고 전한다. 〈대종경선외록〉에 기록되기를 소태산 대종사가 “앞으로 좋은 세상 온다. 너희들은 좋은 세상 보겠다”고 말씀했고, 이에 황이천이 “대종사님은 못 보십니까?” 하고 사뢰니 “나는 못보지. 여행을 가야겠다”는 말씀을 했다고 한다. 또한 황이천은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하기 전에 뵀을 때 전혀 병색이 없었고, 오히려 황이천에게 서장 회의에 다녀온 일을 묻기도 해 황이천은 “종사님, 꾀병이지요?”라고 했다. 그리고 경
문화
유원경 기자
2023.07.1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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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범죄로 희생된 영가를 비롯, 교정시설에 있는 이들의 부모선조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6월 22일 서울구치소에서 열반자 및 부모선조 합동위령재가 열린 것이다. 이날 서울구치소 에서 열반했거나 수용자들로 인해 생명을 잃은 영가, 혹은 수용자 및 직원들의 부모와 선조들 97위가 참석자들의 위로를 받았다.서울구치소 합동위령재는 코로나19로 3년 만에 재개돼 의미를 더했다. 원불교 법회를 보고 있는 수용자들에 한해 명단을 접수받았으며, 이들은 몇 명씩 국화꽃을 올리고 재배를 하며 분향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교화
민소연 기자
2023.07.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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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전명오 교무] 스페인에 가면 사람과 황소가 싸우는데, 경기장 한쪽 ‘케렌시아’에 가면 투우사는 공격을 멈추고 소도 재충전과 안식의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궁금해집니다. 내가 지치고 쉬고 싶을 때, 다시금 힘을 얻고 싶을 때, 나만의 안식처, 나만의 보금자리에서 힘을 보충하고 다시금 부처님 법바다를 힘차게 누빌 수 있는 나만의 케렌시아는 어디일까? 나의 케렌시아는 어디이면 좋을까?첫째, ‘허공’이 되면 좋겠습니다. 정산종사께서는 “그대들은 허공이 되라. 허공은 비었으므로 일체 만물을 소유하나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수
설교
전명오 교무
2023.07.1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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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오늘도 교당에서 앞치마를 벗고 온 참이었다. 다음날 재가교역자훈련과 일요법회, 화요선방까지 교당에서 공양할 몇백 인분의 식사 재료 준비를 도왔다. “오늘도 봉공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는 박용신 강남교당 봉공여성분과장. 그는 낮은 자리 진 자리에 가장 먼저 달려가 상 없고 말 없는 봉공을 펼쳐왔다. “봉공이라는 게, 처음에는 남에게 베푼다며 시작하죠. 그런데 어느샌가 자신을 위한 일인 걸 알게 돼요. 공부가 다 이 현장에서 이뤄지고, 우리 교법과 마음공부가 다 봉공 속에 있습니다.”진정한 봉공
여기, 은혜로운 당신
민소연 기자
2023.07.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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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1891~1943)의 성은 박씨(朴氏)요, 어릴 적 이름은 진섭(鎭燮)이며, 결혼 후 자(字)를 처화(處化)라 하였다. 1916년 깨달음(大覺)을 얻은 후 스스로 이름을 ‘중빈(重彬)’이라 하고, 소태산(少太山)이라는 호(號)를 사용하였다. 소태산 대종사 열반 후 정산 송규 종법사가 ‘원각성존(圓覺聖尊)’이란 존호(尊號)를 올렸다. 그러나 원불교 교도들은 이 세상 모든 생령의 가장 큰 스승이라는 의미인 ‘대종사(大宗師)’라는 존칭을 주로 사용한다. 소태산 대종사의 키는 175㎝ 정도이며, 체중은 90여㎏으로 걸음은 조
온라인뉴스
원불교신문
2023.07.0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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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수타원 김정근 정사(秀陀圓 金正根 正師)가 6월 20일 열반에 들었다. ‘여성도 공부와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영산성지를 새기고 살다가 원기38년(1953) 입교와 동시에 출가를 단행한 수타원 정사는 원기48년(1963) 서원승인을 받았다.수타원 정사는 소태산 대종사가 머물고 교법을 제정했던 변산성지에 교당이 없던 간고한 시기에 27년간 젓갈장사, 김장사 등 가리는 일 없이 오직 신심과 혈성으로 변산교당을 개척하고, 법도량의 토대를 세웠다. 이에 대해 전산종법사는 “‘그일 그일에 힘과
열반
이현천 기자
2023.06.2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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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은산 오성수 정사(銀山 吳聖洙 正師)가 6월 22일 열반에 들었다. “작은 효에 얽매이면 큰 효를 놓치게 된다”는 스승님 말씀에 맏아들의 책임도, 가장의 소임도 분별없이 내려놓고 전무출신으로 나서 공중사에 헌신해 큰 효를 다한 일생이었다. 은산 정사는 오직 공을 위해 어렵고 힘든 일도 묵묵히 책임을 다하고, 재무부(현 재정산업부), 동산선원(현 동산원로수도[양]원), 원광병원(현 원광대한방병원), 대구보화당, 삼정원, 이리보육원, 이리자선원 등 교단의 자선·경제기관에 헌신하며 대보은과 대공심을 실천했다.
열반
이현천 기자
2023.06.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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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준원 소장] 삶을 네 자로 요약해 본다. 거래여수(去來與受)! 오고 가며 주고받고 살아간다. 야구와도 같다. 서서 공을 던지는 투수와 앉아서 다양한 구질의 공을 받는 포수 간에 마음이 통해야 공을 잘 주고받을 수 있다. 타자가 3할대만 되어도 명타자다. 이루고 싶은 일 10가지 중에서 3가지만 결실을 맺으면 잘 살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를 가꾸려면 100년, 사람을 키우려면 최소 10년이 걸린다. 소태산 대각 후 총부 건설까지 걸린 기간을 보라. 교단사 108년, 원로 선진들께서는 동남풍 부는 봄날의 추억 같을
평형수
이준원 소장
2023.06.2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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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대은 교도] 1948년 12월 10일,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통해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경험한 인류 사회는 인간성 회복을 위해 반성과 성찰의 의지를 담은 세계인권선언문을 공포했다. 세계인권선언문은 인류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보편적 인권을 인정한 최초의 역사적 사례로서, 국제 사회가 협의를 통해 인류 역사를 진일보시킨 세계사적 위업이자 세계평화의 가능성을 열어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세계인권선언문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는 인류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세계인들에게 확립시켰다는 데 있다. 그 덕분에 오늘
논설위원 칼럼
김대은 교도
2023.06.2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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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승원 교도] 선을 하다 보면 간혹 일심이 되지 못하고 지난날이 떠오른다. 어리석었던 그때 그 후회감이 마음을 요란하게 만든다. 내 주변머리로는 ‘그 환경에 따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일어나는 마음을 꾸짖어 다시 가라앉힐 뿐이다.다행히도 원불교와 이 대도정법을 만나 돌고 도는 이치를 터득하게 됐으니 조금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계속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다시 되새겨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64년 전, 아내가 둘째 아들을 낳고 약 일주일이 지난 때였던 것 같다. 갑자기 몸이 아프다며 몸져누우니 다급히
은생수
김승원 교도
2023.06.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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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소태산대종사성탑은 원기34년(1949) 4월 25일 제1대성업봉찬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원기28년(1943)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한 후 6년 만이다. 소태산 대종사 열반 직후 우리 선진들은 중앙총부 내에 소태산 대종사의 성해를 모시려 했으나 일제의 강압으로 무산됐다.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인들은 불법연구회의 분열과 와해를 바랐고, 그로 인해 강제로 장자산으로 임시 안장하게 됐다.6월 6일 대각전에서 발인식을 거행한 다음 수도산 화장막에서 화장하고, 6월 7일 성해를 조실에 안치하여 49종재를 엄수한 다음
문화
유원경 기자
2023.06.2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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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 30상(염화시중(拈華示衆) 상): 마하가섭이 빙그레 웃은 이유는마하가섭(摩訶迦葉)은 석존이 열반에 든 후 ‘1차 결집’을 주도, 최초의 불교 경전을 펴내고 교법을 통일한 10대 제자 중 으뜸이다. 세존의 마음을 그대로 본받은 인물로도 일컬어진다.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번뇌를 털어내는 불교식 수행법 ‘두타행’을 가장 잘 지킨 수행자다. 두타행은 ‘하루에 한 번만 먹는다’, ‘깨지고 헌 옷만 입는다’, ‘나무 밑에서 지낸다’ 등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엄격하게 수행하는 방법이다. 석존과 가섭 사이에는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한
일원 108상
윤덕균
2023.06.1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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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고타원 이덕심 대봉도(古陀圓 李德心 大奉道)가 6월 5일 열반에 들었다. 대산종사로부터 “애썼다. 항마는 네가 했으니 여래는 내가 시켜주마”라는 격려의 한마디에 일생을 정성과 서원으로 일관, 오롯이 교화 발전에 바친 일생이었다.따듯하고 자비한 성품과 명쾌한 설법, 기도 정성을 보인 생애로 감동을 전한 고타원 대봉도는 솔선수범과 이소성대의 정신으로 칠보·서전주·안암·부산진 등 5개의 법당을 신축하고, 무등·진북·화정 등 6곳의 연원 교당을 개척해냈다. 이외에도 인재육성과 육영사업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아 4명
열반
이현천 기자
2023.06.1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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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반갑습니다. 육일대재로 시작하는 6월에, 추모의 정성을 바치고 싶은 인연과 나 자신을 위해서 ‘열반 전후에 후생길 인도하는 법설’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열반 전후에 후생길 인도하는 법설’은 원기20년(1935)경 소태산 대종사께서 직접 지으신 경문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열반 ‘전’과 열반 ‘후’에 후생길, 사람이 죽은 후에 가게 되는 길을 인도합니다. ‘열반 전후에 후생길 인도하는 법설’ 첫 문장은 “정신을 차려 부처님의 법문을 잘 들으소서”입니다. 경계를 대해서 정신을 차리는 것이 쉽지 않지만,
설교
오덕진 교무
2023.06.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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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전북교구 서전주지구가 추모의 달 6월을 맞아 익산성지를 방문해 소태산 대종사를 추모하며 순례길에 나섰다.6월 4일 익산성지를 방문한 서전주지구 500여 명의 재가출가 교도는 전법성지인 중앙총부의 역사를 돌아보며 초창기 선진의 역사를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문성 교무(효자교당)의 강의로 소태산 대종사와 제자들이 초기 익산성지에 어떻게 자리잡게 됐는지, 또한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까지 어떤 역사가 흘렀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특히 오후 순례 시간에는 성지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대각전을 비롯한 주요 문
교화
유원경 기자
2023.06.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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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이제는 강원도도 가까워졌다지만, 태백은 여태 굽이굽이 산속이다. 백두대간 등줄기, 해발 800m에 자리한 곳. 그토록 깊고도 높은 동네, 그래서 그 이름도 크고(太) 밝은(白) 태백이다. 달이 뜨면 온 동네에 우렁우렁 울린다는 태백에 일원상이 뜬 것은 원기75년(1990), 선교소 인가 4년째 되던 해였다. 아예 신축을 하니 대법당도 대법당처럼, 생활관도 생활관처럼 지었다. 이 집을 올린 당시 인부 중에 참 지중한 인연이 있었다. 원불교의 ‘원’ 자도 모르고 교당을 지어 올린 이정선 교도다. 벽돌로 시작한
여기, 은혜로운 당신
민소연 기자
2023.06.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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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준원 소장] 고대 이집트 신화에 최초의 우주는 빛도 없는 심연(深淵), 어둠의 바다인 ‘누(Nu)’였다. 남성(양)도 여성(음)도 아닌 중성, 자웅동체다. 혼돈의 상태에서 ‘벤벤(Ben-ben)’이란 언덕이 솟아올라, 최초의 신 ‘아툼(Atum)’이 나왔다. 텅 빈 고요 공적(空寂)에서 스스로 생겨났다. 창조의 신 아툼은 태양신 ‘라(Ra)’를 창조했다. 태양신이 공기의 신과 습기의 신을 만들고, 뒤이어 여러 신들과 수많은 생명이 탄생했다. 도시가 열리고 인구가 증가하며 문명이 발달했다. 신화는 초월과 현존, 본원과
평형수
이준원 소장
2023.06.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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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박세훈 교무] 과 을 보면 초기교단에서는 단(團)이라는 조직과 학력고시라는 삼대력 평가시스템을 통해서 지도자를 양성했다.먼저 학력고시법은 수양·연구·취사의 삼과(三科)에 대한 공부인의 훈련성적을 고시(考試)하고, 과목 내에 반(갑·을·병·정·무)를 두며, 이를 통해 ‘공부인의 실력’을 고시하고 그 실력에 따라 반을 구별했다.단을 통한 지도자양성 시스템은 의 조단 제16~19조 규정에서 나타난다. 공부와 사업을 전무(專務)하기 위해 전무출신 실행단을 조직하고,
법규궁리
박세훈 교무
2023.06.14 1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