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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수보리 :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참된 믿음을 내는 중생이 있겠습니까?(世尊 頗有衆生 得聞如是言說章句 生實信不)부처님 :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가 열반한 뒤 후 오백세에 계율을 지키고 복을 닦는 자가 있어서 이 법문을 듣고 능히 믿음을 일으켜 참되다고 여길 것이다(莫作是說 如來滅後後五百歲 有持戒修福者 於此章句能生信心 以此爲實).『금강경』 6장에서 수보리는 말세 중생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참되다는 생각과 믿음을 낼 수 있을지 걱정한다. 이에 부처님은 그런 말을 하지 말라며 후세에 청정한
여시아문
김도현 교무
2022.05.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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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백타원 이현조 대봉도(白陀圓 李現照 大奉道)가 4월 22일 열반에 들었다. 그는 ‘전무출신만이 내가 갈 길이요, 세상에서 제일 큰일이라’는 한마음으로 인재 발굴과 교화발전에 온 몸을 던져 창립교단의 교화 초석을 튼튼히 놓는 일생을 보냈다.백타원 대봉도는 원기42년 이리교당 부교무를 시작으로 군남·서광주·남원·영도·서성로·사직·진주·방배교당에서 봉직하다 원기86년 정년 퇴임했다. 백타원 대봉도는 개척교화의 명을 받으며 정산종사의 ‘전무출신 많이 내도록 하라’는 말씀을 표준 삼아 일평생 교화 현장에서 근무하며
열반
이여원 기자
2022.04.2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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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 기술협력의 일환으로 1970년경부터 대한민국 항구도시 부산에서 대규모 환경보호사업이 진행되었다. 팀의 핵심은 한국인 엔지니어 5명과 독일 엔지니어 5명, 한국인 1명과 독일 경제학자 1명으로 구성됐다. 기술 제도자 및 기타 보조자들까지 거의 40명의 직원이 있는 사무실이 만들어졌다. 사무실은 부산시 토목국 소속이었다. 당시 나는 이 독일-한국 팀의 리더였다. 가족(어린 자녀 3명)과 함께 부산에서 5년 동안 일했다. 그 결과 온 가족이 한국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잘 알고 있었다.우리는 1976년 늦가을에 독일로 돌아왔다. 나는
국제
원불교신문
2022.04.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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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충산 최인천 정사(沖山 崔仁天 正師)가 4월 18일 열반에 들었다. 그는 오랜 시간 병마와 싸워오면서도 전무출신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놓치지 않던 강직하고 정의로운 성직자이자 복지사로 살아왔다.충산정사는 원기71년 방배교당 부교무를 시작으로 안동교당·춘천교구(현 강원교구) 사무국장 서리·정주교구(현 정읍지구) 사무국장 서리·등촌종합사회복지관 주임·방배교당 보좌교무 겸 방배어린이집 원장·한국보육원·번동종합사회복지관·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유린원광종합사회복지관에서 봉직했다.열반소식을 접한 전산종법사는 “충산 정사는
열반
이현천 기자
2022.04.2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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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총부 순례를 하는 교도들이 가장 많이 발걸음을 올리는 곳은 아마도 소태산 대종사 성탑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기도 하는 곳이 바로 성탑 옆에 자리한 소태산 대종사 성비일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 성비는 무엇인가? 또 어떤 의미인가? 소태산 대종사의 성비에는 소태산이 출현한 의의와 구도과정, 그리고 대각과 구세경륜을 펴나간 생애, 업적이 드러나 있다. 이 성비는 ‘제1대 성업봉찬대회’가 열리던 원기38년(1959) 6월 1일, 소태산 대종사 열반 10주기를 맞아 조성됐다. 제명(題銘)
문화
유원경 기자
2022.04.1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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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최지현 기자] 길가를 거닐다보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만나게 되는 ‘간판’. 국내 옥외광고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간판’은 매장의 얼굴이고 상점(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자 매개체가 된다. 15~30초 찰나의 순간에 신뢰감·독창성·차별화를 각인시키는 간판 광고. 의뢰인이 원하는 이미지를 뚜렷하게 나타내면서 주변 상권과의 조화를 이루는 광고를 만들어내는 ‘솜씨’ 광고기획사를 찾았다. 솜씨로 이뤄낸 원스톱 솔루션전북 익산시 고봉로36길 2에 위치한 ‘솜씨’는 20여 년 경력을 자랑하는 이승운(법명
여기, 은혜로운 당신
최지현 기자
2022.03.3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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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원기25년(1940)은 일본 개국 2천6백년 기념의 해였다. 조선총독부는 조선 내의 불교를 모두 친일단체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당시 불법연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독부는 ‘말로만 복종하며 지도에 따르겠다고 하지 말고 그럴만한 실적을 보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소태산 대종사에게 일본을 방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왕을 만나고 신사참배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총독부의 지시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가서는 안될 일이나 가지 않겠다고 거부하면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소태산 대종사는 일본행을 위해
교화
유원경 기자
2022.03.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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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기산 이현도 원정사(基山 李玄度 圓正師)가 16일 열반에 들었다. 그는 한순간도 성리를 놓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며, 바른 공부길을 잡아갈 수 있도록 후진들을 이끌어줬다. 기산 원정사는 원기45년 남원교당 부교무를 시작으로 산동·불목·당리(현 하단)·용신·봉황·해룡기술학교(현 해룡중고교)를 거쳐 하섬해상훈련원 원장으로 봉직하다 원기78년 퇴임했다. 퇴임 후에는 중앙상주선원 상임고문과 원불교문인협회 고문을 맡았고, 동학농민혁명유족회장을 맡아 대사회적 활동에도 힘썼다.기산 원정사는 일생을 일심공부 잘하여 큰
열반
유원경 기자
2022.03.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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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관타원 이순성(館陀圓 李順性) 정사가 8일 열반에 들었다. 그는 순일한 마음과 정성심으로 일생을 교화지를 떠나지 않았으며,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항상 낙도한 수도인의 삶을 살았다.관타원 정사는 원기54년 장수교당 부교무를 시작으로 산동·해리·불목·문장교당, 판교선교소, 왕촌교당에 봉직하다 원기83년 정년퇴임했다. 관타원 정사는 간난한 초창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교화를 꽃피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며 교단의 기틀을 다졌다. 10여 곳의 어려운 여건의 교당에서만 근무하면서도 원망심 없이 공도에만 헌신했다. 오직
열반
유원경 기자
2022.03.1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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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대승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보살)은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으로 이끌겠다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데 모든 중생을 다 열반에 들게 하여도, 실제로 제도를 받은 중생은 없다. 왜냐하면 보살은 상(相)이 없기 때문이다.이는 『금강경』 3장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소명태자가 붙인 3장의 제목은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이다. ‘대승의 바르고 으뜸되는 가르침’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 대승정종분에서 대승의 공부는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과 모든 상을 놓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여시아문
김도현 교무
2022.03.1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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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한번 태어나면 누구나 맞게 되는 여행길 ‘죽음’. 그 이별의 여행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있다. 장례지도사는 고인을 잘 보내드리기 위해 봉사한다. 그들은 이생을 떠나는 고인의 마지막 의복인 수의를 입혀주고, 생전 종교의식으로 다음 생을 잘 찾아가도록 돕는다. 원광의전 김기영(법명 도언·UN석포교당) 대표는 23년 경력의 베테랑 장례지도사다. 그는 부산을 대표하는 원불교 장례지도사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한다. 이별의 안내자그가 장례지도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친구의 권유였다. 잇따른 사업 실패로 이런저런 일을
여기, 은혜로운 당신
유원경 기자
2022.03.0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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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은선 기자] 중앙총부 ‘대각전’은 소태산 대종사가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19년간 교법을 편 전법성지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은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은 법신불 일원상이 최초로 정식 봉안됐기 때문이다.원기20년(1935), 중앙총부 내 복숭아 밭 위 언덕이라 불리는 곳에 소태산 대종사의 깨달음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287.59㎡ 규모의 대강당이 세워진다. 일식 목구조를 주된 구조로 하고 부분적으로 전통적 기법을 수용한 근대 건축 양식이 적용됐으며
문화
원불교신문
2022.03.0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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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산타원 고현종(山陀圓 高賢種) 대봉도가 20일 열반에 들었다. 그는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를 마음에 모시고 가르침대로만 살았으며, 일생을 오직 교화에 바친 한결같은 삶을 살았다.산타원 대봉도는 원기34년 관촌교당 부교무를 시작으로 수계·도양·함라·산서·군산·교동·통영·구례·방배교당에 봉직했고, 원기71년 남중교당 교감교무를 역임하다가 원기75년 퇴임했다. 산타원 대봉도는 공가에 살면서 빚지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간고한 창립기 교화의 온갖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교단 발전의
열반
유원경 기자
2022.02.2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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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스물두 살, 당시로써는 꽤 늦은 출가 서원이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어 양재학원(양장 디자인 학원)을 다니던 그를 출가하게 한 데에는 여러 명의 집요함이 있다. 그러나 정작 당시 영산선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작은 오빠(고 은산 김장원 종사)에게는 출가 권유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데….서원을 세우게 된 계기에 대해 “우리집에 수시로 드나들던 영산선원 학생들과 교무들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말하며 웃는 이타원 김기덕 원로교무(里陀圓 金基德·76세). 그의 고향은 소태산 대종사와 같은 영촌마을이다.
선진의법향
장지해 기자
2022.02.1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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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온타원 이성로(溫陀圓 李性露) 정사가 6일 열반에 들었다. 그는 오로지 공을 위한 헌신의 삶으로 근검절약 무아봉공 혈심혈성으로 전무출신의 사표를 보여줬다. 온타원 정사는 원기42년 좌포교당 교무를 시작으로 곡성·운봉·수계·구례교당에 봉직했다. 온타원 정사는 수도인이라면 수도일미를 알아야 한다며 꾸준히 정진적공했고, 어려운 농촌에서 교당을 마련해 유지토대를 세우는 등 말보다 실천으로 대중에게 감동 주는 교화를 했다.열반소식을 접한 전산종법사는 “특유의 근검함으로 곡성교당 매입, 운봉교당 신축기금을 마련하며
열반
유원경 기자
2022.02.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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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원달마센터에서 수차례에 걸쳐 훈련을 해왔고, 이번에 동선훈련을 제안 받았을 때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고자 마음먹었다. 남편과 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원달마센터의 도움을 받았고, 그래서 원달마센터를 마음(영성)의 고향으로 생각한다. 2019년에 남편이 병고 끝에 열반했는데, 그때 아주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 남편을 보며 원불교 공부를 했기 때문에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 했다고 믿는다.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이번 훈련은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줄 초대장이었다. 49년간 살았던 펜실베니아를 떠나서 자식들이 살고
온라인뉴스
원삼매 교도
2022.02.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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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나상호 교정원장이 틱낫한 스님의 입적을 애도했다. 지난달 24일 나 교정원장은 “큰 정신적 가르침의 리더십을 보여주셨던 스님의 입적에 큰 슬픔을 전한다”면서 교단을 대표해 추도문을 전했다. 나 교정원장은 “불법의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로 인류의 미래에 평화를 심어주신 스님의 영전에 감사와 추모의 마음을 올린다”고 추모하며 “스님께서 가시는 앞길이 원불교 모든 교도의 진심 어린 정성으로 법신불 사은의 가호 속에 평안과 영원한 안식이 함께 하기를 염원드린다”며 성주(聖呪) 주문으로 심축의 마음을 전했다. [
교화
이여원 기자
2022.02.0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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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 변이가 대유행 단계에 들어가면서, 원불교 코로나19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대응 1단계 지침으로 방역 수위를 높였다. 대책위는 대응 1단계 지침을 통해 “6일 현재 신규 확진 38,700명대로, 전국 확진자가 1백만 명(1,009,688명)을 넘어섰다”면서 “중앙총부 내 모든 공식적인 회의와 모임을 비대면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대책위가 발표한 대응 1단계 지침에 따르면, 중앙총부 직원들은 외부출장이나 타 지역이동 후 의심 증상이 없어도 자가키트 검사를 의무화해야 한다. 타 지역이동 후 자가키트 검사 의무화중앙총부 내
교화
이여원 기자
2022.02.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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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한정란 정토] 나는 정토 14년 차이다. 정토가 뭔지도 모르고 오직 남편 교무가 좋아서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다. 결혼 당시 남편 교무는 배내청소년훈련원에서 근무했다. 부임지가 너무 멀어 평균 집에 오는 횟수가 한 달에 1~2번이었고, 그러다 보니 일하며, 아이를 혼자 키우며, 당시 박사논문을 쓰며 너무 힘겨운 생활을 했다. 그래서 시댁과 합가했고, 남편 교무도 원광대학교 대학법당으로 발령이 나 좀 편안해졌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시아버지가 당뇨합병증과 치매로 투병을 하게 됐다. 이 시기에 남편 교무는 광주교
은생수
한정란 정토
2022.02.0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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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경혜 교무] 남편 소개로 심신수련 단체에 인연이 닿아 몇 년간 수련과 활동가로 활동을 했다. 나이 마흔에 지도자 입문 과정을 이수해 단 센터 원장으로 복무했고, 이후에는 협력사에서 봉직했다. 원기101년 20여 년의 복무를 마치고 퇴임했다. 그해 10월 말, 지중한 후배의 소개로 서울 안암교당에 입교했다.일요법회 설법과 수요마음공부방 강연에서 “영생의 행복자가 있으면 지금 당장 나와 보라”는 김제원 주임 교무님의 당당한 말씀이 마음속에 큰 울림이 됐다. 교법 강연을 통해 의식이 성장하는 기쁨도 컸지만, 친정집 유산 상
은생수
김경혜 교무
2022.01.28 10:00